2억 한강 괴물, 10억 새우타워…예술도시 눈멀어 흉물 짓는 지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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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0주년지난달 27일 찾은 경기 군포의 철쭉동산 공원. 산책로 한쪽에는 8m 높이의 금속제 조형물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조형물 꼭대기로 시선을 돌리자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여성 모양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공원 분위기와 동떨어진 이 작품은 군포시가 2010년 김연아 선수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기념해 설치한 조각이다. 김 선수가 군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으니, 김 선수 동상을 멋지게 만들어 세우면 관광객들이 군포에 몰려들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제작비는 5억2000만원. 세계적인 조각가에게 대형 작품을 맡길 수도 있는 금액이었다.
100년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
(9) 어글리 공공예술…헛돈 쓰는 지자체
지자체 간 '예술도시' 타이틀 전쟁
수억 쓰는데도 작품성 검증 '뒷전'
임기 내 치적 쌓으려 "일단 만들자"
연간 1000점 세금낭비 작품 탄생
5억 '초상권 없는 김연아 동상'부터
19억 주고 산 전과6범 천사상까지
김연아 없는 김연아 동상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조잡한 솜씨 탓에 김 선수와 전혀 닮지 않은 동상이 탄생한 것. 더 큰 문제는 김 선수 측과 일절 상의 없이 무단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군포시는 ‘김연아’라는 이름조차 동상에 쓰지 못하게 됐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저 동상이 누구를 표현한 것인지 아냐’고 묻자 “전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군포시처럼 세금으로 흉물을 양산한 사례는 전국 각지에 부지기수다. 서울 한강공원의 ‘괴물 조형물’(1억8000만원), 인천 소래포구의 ‘새우타워’(10억원), 전북 고창군의 ‘주꾸미 미끄럼틀’(5억2000만원), 저승사자를 연상시켜 무섭다는 민원이 빗발쳐 철거된 세종시 국세청 앞 ‘흥겨운 우리가락’(1억500만원) 등 사례를 들자면 끝도 없다. 대체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걸까.치적 쌓기 급급…예술성엔 무관심
공공미술의 원래 취지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해 삶의 질과 문화 수준을 높이자는 것이다.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지역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작품 수준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공미술 작품은 대중적인 아름다움과 작품성 모두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미술계의 평가다. 대부분의 공공미술 작품 설치가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를 위해 추진되기 때문이다.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대부분의 지자체장이 작품의 예술성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업적을 남길 수 있는 ‘큰 작품 하나’를 설치하는 데만 집중한다”고 지적했다. 충북 괴산군이 5억원을 들여 제작한 ‘초대형 가마솥’이 단적인 예다. 2005년 설치한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용도를 찾지 못한 채 애물단지로 방치돼 있다.“일단 만들고 본다”는 식으로 제작된 탓에 지자체장과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흉한 생김새 탓에 철거 논란이 일었던 인천 송도의 ‘갯벌 오줌싸개’ 동상은 당초 작품 가격이 얼마였는지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작품이 설치된 지 13년이 지난 탓에 자료가 없다”고 했다.관리가 안 되다 보니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지역 주민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는 사례도 적잖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전국 각 지자체에서는 ‘벽화거리 조성’이 유행했다. 초라한 골목길에 형형색색의 벽화를 그려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들어선 벽화마을은 전국에 2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중 대부분은 흉물로 전락했다. 지자체의 유지·보수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했던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 주민들은 아예 벽화를 지웠다.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쓰레기로 인한 피해 탓이다.
브로커 놀이터 된 공공미술 시장
공공미술 작품을 강제로 설치하게 하는 법도 ‘시각 공해’를 가중하고 있다. 1995년 도입된 건축물미술작품제도는 1만㎡ 이상 건축물을 신축 및 증축할 때 건축비용의 0.1~1%를 미술 작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규정한 제도다. 이로 인해 형성된 시장 규모는 연간 1000억원에 달한다.도시 미관을 개선하고 작가들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이 제도 때문에 공공미술 시장이 ‘복마전’으로 전락했다는 게 미술계의 평가다. 억지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작품을 사야 하는 건축주, 심의를 담당하는 지자체, 지방 작가협회 등의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공공미술꾼’으로 불리는 브로커들이 절묘하게 파고들어간 탓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심사위원 로비, 이면계약을 통한 리베이트 지급 등 갖가지 편법을 통해 일부 작가와 업체가 ‘눈먼 돈’을 나눠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미술계는 공공미술을 둘러싼 이 같은 졸속 관행과 제도에 대해 지난 10여 년간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변한 건 없다.2014년과 201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 업무를 체계화하라며 각 지자체에 제도개선 권고를 했지만, 아직도 상당수 지자체는 관련 통계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성수영/유승목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