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주고받은 '러브레터'…우정과 사랑, 불륜 사이 [연극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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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러브레터' 리뷰막이 열리면 두 사람이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스킨십은 물론 눈도 마주 보지도 않은 채 각자 편지만 읽으며 서로의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이어진다. 준법 소년 앤디, 자유로운 영혼 멜리사가 중년이 될 때까지 50여년 동안 주고받은 300여 통의 편지만으로 내용이 구성된 연극 '러브레터'에 대한 이야기다.
'러브레터'는 책과 글을 사랑하며 규칙을 중요시하는 바른생활 모범생 앤디와 그와 정반대로 글보다는 그림을 좋아하며 당당하고 솔직한 멜리사의 유대와 우정, 그리고 인간적인 교감을 그려낸 2인극이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탄탄한 작품성으로 현재까지도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공연되는 명작이다. 드라마 데스크상 4회 수상, 루실 로텔상 2회 수상, 퓰리처상 2회 노미네이트 등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톰 행크스, 멜 깁슨, 시고니 위버, 브룩 쉴즈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출연하여 사랑받았다.극은 8살 때 처음 편지를 주고받는 앤디와 멜리사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멜리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앤디가 멜리사의 어머니에게 감사 편지를 쓰면서 두 사람은 '펜팔'을 하게된다. 성장하면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규율이 엄격한 기숙사 학교에 진학하고, 이후 각자의 진로를 찾아가지만 편지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어진다. 1937년부터 1980년대까지 변화하는 시간이 편지에 반영돼 두 주인공의 인생 여정이 펼쳐진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편지의 내용도 달라진다. 편지를 쓰다 걸려 선생님에게 혼나던 어린 꼬맹이들은 친구들과의 관계, 이성 친구에 대한 호기심,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풋풋했던 10대를 지나 미묘한 감정이 엇갈리는 20대를 보낸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일할 때에도, 각기 다른 배우자를 찾은 후에도 편지는 끊기지 않는다. 오랜 기간 돌고 돌아 결국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지만, 현실적인 부분들이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갈등은 고조 다.
극의 주요 시대적 배경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다 보니 현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 예일과 하버드를 거쳐 해군에 입대한 후 정치적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는 앤디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공부와 담을 쌓으면서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방황하는 멜리사의 모습은 현대의 사회적인 이상향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그런데도 원숙한 배우들의 노련미 넘치는 연기는 무대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든다. 앤디 역에는 정보석과 박혁권, 멜리사 역엔 하희라와 유선이 각각 캐스팅됐다. 정보석과 하희라, 박혁권과 유선이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는데, 이들 모두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각각의 관계가 연기에서도 드러난다는 평이다. 정보석과 하희라는 1988년 드라마 '하늘아 하늘아'에서 호흡을 맞췄고, 박혁권과 유선은 2000년 연극 '모스키토'로 인연을 맺었다.
어린아이의 귀엽고 발랄한 모습부터 중년이 된 후 원숙함이 깃든 모든 시간의 흐름은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격정적인 움직임, 화려한 무대 전환은 물론 옷차림의 변화조차 없지만,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관객들을 웃고, 울린다.
한편 '러브레터'는 오는 27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 U+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