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 美서 라이브 '대참사'…'K팝 아이돌' 논란 터졌다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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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그룹 쏟아지는 K팝 업계"무대에 선다는 게 어떤 건지,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 아니면 하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고 무대를 소화하는 것?"
좋은 곡=완성도?…팀 내실도 중요
'기록 싸움 매몰' 경쟁 방식 문제
그룹 르세라핌 멤버 사쿠라는 미국 대형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에서 무대를 마친 후 라이브 실력에 혹평이 쏟아지자 장문의 심경글을 남겼다. 그는 누군가의 눈에는 미숙할지도 모르겠지만, 본인들은 최선을 다했으며 그간 선보인 무대 중 최고였다고 자평했다.밴드 연주에 맞춰 라이브로 노래해야 하는 페스티벌의 특성상 '코첼라'는 실력 검증의 잣대가 되곤 했다. 2019년 처음 '코첼라'에 입성해 지난해 헤드라이너까지 장식했던 블랙핑크는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과 탄탄한 보컬로 찬사를 받았던 바다. 그간 라이브 실력 논란이 꾸준히 따랐던 르세라핌이기에 이들의 '코첼라' 데뷔 무대에는 유독 큰 관심이 쏠렸다. 여론을 뒤집을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논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오히려 '코첼라 무대'가 자충수가 됐다. 르세라핌은 다소 격한 안무를 소화하며 노래했는데, 심하게 떨리는 불안정한 보컬과 매끄럽지 못한 고음, 밴드 사운드를 뚫지 못하는 일부 멤버들의 힘없는 발성 등으로 지적받았다.
사쿠라는 코첼라 광장을 걸으며 응원이 쏟아졌다고 했다. 실제로 현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현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A씨는 한경닷컴에 "르세라핌을 향한 관심이 뜨거웠고, 공연 내내 폭발적인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다만 라이브 논란에 대해서는 보다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문제라며 "르세라핌에게는 과분한 무대였던 게 사실"이라고 짚었다.특히 '아이돌은 실력이 없다'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업계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잘 짜인 기획 아래 비주얼적인 면을 강조해오던 K팝 그룹은 '양산형 그룹의 한계'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바다. K팝의 인기가 높아지고 아이돌이 젊은 층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보는 음악'의 중요성은 더 높아졌다.
실력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대대적으로 '실력파' 마케팅을 하는 곳도 많았다. 퍼포먼스는 물론 노래 실력도 훌륭한 일부 팀들이 "음악방송에서 1등을 해 라이브를 들려주고 싶다"고 대놓고 말하는 일도 늘었다. 이는 곧 실력을 제대로 증명할 무대가 많지 않다는 뜻으로, 퍼포먼스에 주력하면서 라이브는 기피하는 K팝 환경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시에 '실력 없는 아이돌을 잡아내겠다'는 분위기도 조성돼 왔다. 르세라핌과 함께 신인 아일릿 역시 미숙한 실력으로 지적받고 있고, 반대로 스트레이 키즈, 에이티즈, 있지, 에스파, 스테이씨, 엔믹스, 키스오브라이프, 베이비몬스터 등은 '실력파' 아이돌로 재조명됐다.기록 싸움에만 매몰된 업계의 경쟁 또한 건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초, 최단 기록을 연신 홍보하고 있는데 이러한 환경이 결과적으로 완성도 있는 무대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르세라핌은 데뷔 1년 반 만에 '코첼라' 무대에 섰는데, 소속사 쏘스뮤직은 이를 두고 '역대 한국 가수 중 최단기 입성'이라며 자화자찬했다.
한 엔터 관계자는 "하나의 팀을 위해 오랜 연습 기간을 함께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오디션을 통해 단기간에 팀 구성이 이뤄지고,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데뷔하는 경우가 많다. 각자 연습 경력이 있는 친구들을 묶어 회사의 수익성을 위해 일찍 데뷔시키니 결국 활동하면서 호흡을 맞춰가야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쿠라 역시 "데뷔한 지 2년도 채 안 된, 투어도 한 번밖에 안 해 본 우리"라며 경험 부족을 언급했다. 결국 과열된 기록 경쟁이 아티스트의 노력과 무관하게 과분한 무대였다는 지적을 불러온 셈이다.화려한 참여진을 내세우며 '완성도'를 자신하는 이면에 가장 중요한 멤버 개개인, 혹은 팀적인 완성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결국 가수는 노래하는 직업"이라는 여론이 거세진 상황. 특히 대형 기획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K팝의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기본에 충실하고 내실을 다지는 방안을 고심해야 할 시점이다. 'K팝 아이돌은 실력이 없다'는 편견에 모든 이들의 노력이 가려지지 않도록.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