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뉴노멀이 돼 가는 '3高'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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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고물가·고환율, 더 장기화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A캐피털은 작년 말 우량 자산을 증권사에 담보로 제공하고도 연 14%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채권시장에서 화제가 됐다. 비(非)금융지주 계열 캐피털사의 열악한 자금조달 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처럼 캐피털사들도 수십조원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브리지론 및 중·후순위 대출을 내줘 시장이 자산 건전성을 의심하고 있다. 캐피털사들은 한편에선 저금리 시절 연 7~8%를 받고 부동산 PF 대출을 내준 뒤 ‘레고랜드 사태’ 후 6개월마다 만기를 연장해주고, 다른 한편에선 고금리 시대에 그 두 배 수준의 금리로 신규 자금을 조달하는 ‘역마진 경영’을 하고 있다. PF 사업이 무너지면 대출 원리금조차 회수하지 못한다.
정부, 최악 시나리오 대비해야
이상열 경제부장
역마진 경영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 2022년 글로벌 금리 인상기 이후 수만, 수십만 중견·중소 제조업체가 겪는 상황이다. 영업이익률이 높아야 6~7%인 신용등급 A~BBB등급 제조업체들은 요즘도 연 9~12% 금리로 돈을 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417개 수출기업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자 비용이 영업이익과 같거나 초과한다’는 응답이 57.3%에 달했을 정도다.기업이 역마진을 버티는 이유는 간단하다. 곧 상황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희망이 팽배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국 수출이 회복되는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Fed)이 올해 여섯 차례 금리를 내리고 한국은행도 이르면 상반기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고금리 시대가 서서히 저물면서 올해 경기는 상저하고일 것으로 예상됐다.
이달 들어 상황이 돌변하고 있다. 고물가, 고환율까지 겹치며 고금리 시대가 기대보다 훨씬 더 장기화할 게 확실시되고 있다. 미국의 3월 고용지표와 소비자물가지수(CPI), 소매판매가 일제히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강한 경제에 상반기 미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은 사라졌고, 올해 전체적으로 연말 한 차례 정도 내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Fed의 다음 금리 행보는 인하가 아니라 인상이 될 가능성을 시장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파격 조언’까지 했다.
이는 강달러도 불러냈다. 수출 호조, 밸류업 조치로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가 순유입되지만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00원을 뚫고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현재 배럴당 80~90달러인 국제 유가가 120~13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3고’ 현상이 올해를 넘어 내년까지 이어지며 ‘뉴노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면서 올해 금리 인하를 검토하는 한은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3고 장기화 전망은 한국 경제를 시계 제로 상태로 내몰고 있다. 고유가와 고환율은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물가를 올려 소비 위축을 유발할 것이다. 고금리 장기화는 영끌족 개인과 소상공인들의 부채 폭탄을 터뜨릴 수 있다. 부동산 PF 사업성을 더 떨어뜨려 캐피털·저축은행의 재무제표를 망가뜨릴 수 있다. 한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PEF) 대표는 “장기간 역마진 경영으로 한계상황에 내몰린 주물, 조선기자재 분야 등의 중견·중소기업은 1년간 고금리가 지속되면 무더기 부도가 날 것”이라고 했다. 정부와 경제주체 모두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 지금처럼 연 5%대 고금리를 3년 이상 유지한 1990년대 중후반,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었던 것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