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터널' 지나며 더 강해진 美경제…금리 뛸때 성장률도 뛰었다

세계경제 휘청이는데…나홀로 호황 누리는 '미스터리 미국'

물가상승률 6%P 떨어지는 동안
실업률 3%대로 '완전 고용' 유지
'장단기 금리 역전=침체' 빗나가
IMF, 올 성장률 전망 2.7%로 높여

일각선 '반짝 호황' 분석
공급망 뚫려 생산성 일시적 향상
4분기 신용카드 연체율 역대 최고
미국 경제가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긴축 후폭풍으로 대부분 국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미국은 예외다. 인플레이션 둔화에도 완전고용 수준을 유지하고 소비는 여전히 활황이다. 원격근무 확산 속에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졌고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지 오래지만 침체는 오지 않고 있다. 기존의 경제 이론과 법칙으로 설명하기 힘든 미스터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긴축에도 고속 성장

초고속 금리 인상 속에서도 미국 경제는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3월까지 ‘제로(0)’이던 기준금리가 2년 새 연 5.25~5.50%로 오르는 동안 성장률은 꺾이지 않았다. 전 분기 대비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2.2%(연율 기준)에서 4분기에 3.4%로 상승했다. 16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와 내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0.6%포인트, 0.2%포인트씩 상향 조정해 각각 2.7%, 1.9%로 전망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강도 긴축으로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던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빗나갔다.

미국 노동시장도 예측에서 벗어났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이 반비례한다는 필립스 곡선이 들어맞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미국의 전년 동기 대비 물가상승률은 2022년 6월 9.1%로 정점을 찍고 지난해 말 이후 3%대로 내려왔다. 그럼에도 이 기간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인 3%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다.

금리 역전 현상에 대한 통념도 통하지 않았다. 그동안 장기 국채 금리가 단기 국채 금리보다 낮아지면 경기 침체가 뒤따랐다. 1977년 이후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2년 만기 금리보다 낮아진 게 7회였는데 이 중 다섯 차례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하지만 2022년 4월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난 뒤 현재까지 미국에서 침체 기미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황금의 길’ 이끈 생산성

생산성도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전문가들은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가 늘어나면 노동 생산성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시간당 생산량으로 측정하는 미국 노동생산성지수는 2022년 2분기 108.3에서 지난해 4분기 112.1로 뛰어올랐다. 기준점인 2017년 노동생산성을 100으로 잡고 측정한 수치다. 1년 전과 비교한 분기별 생산성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2%대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세 분기 동안 생산성 상승률이 팬데믹 이전 10년간 생산성 평균 상승률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 증가로 생산성이 하락할 것이란 예상이 빗나가자 미국 중앙은행(Fed) 인사들조차 혀를 내두른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연방은행 총재는 “놀랍도록 좋은 이 추세가 이어지면 지속적인 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이라는 ‘황금경로(golden path)’로 들어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호황 계속될까

전문가들은 이민과 고용 유연성, 인공지능(AI) 발전을 강한 미국 경제를 이끈 핵심 요인으로 보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3일 한 강연에서 “생산가능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오르고 이민 유입 속도가 빨라졌다”며 “이에 따라 긴축 정책이 수요에 미치는 영향을 어느 정도 상쇄했다”고 평가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고용 유연성에 주목했다. 미국은 해고가 쉬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일시적으로 실업률이 치솟았지만 달라진 시장 환경에 맞는 기업 등으로 인력이 원활하게 이동해 경제가 빠르게 회복됐다는 분석이다. AI가 노동 부족을 해소하고 기술주 중심으로 증시를 활황으로 이끈 점도 미국 경제 호황의 요인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일각에선 반짝 호황일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팬데믹 직후 닥친 공급망 위기가 해소되면서 생산성이 잠시 올라간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팬데믹 당시 미국 정부의 ‘돈 풀기’로 쌓인 소비자들의 초과 저축이 고갈되면 소비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필라델피아연방은행에 따르면 작년 4분기 미국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연체율은 3.4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택근무 확산 등으로 치솟는 오피스 공실률도 불안 요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월가에선 미국 경제가 계속 뜨거울 것이란 점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