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집은 부족한데 오피스는 텅텅…뉴욕의 기발한 해결책은 [나수지의 뉴욕리포트]

오피스는 텅텅, 집은 부족
주거용 건물 용도변경으로
정책전환 서두르는 뉴욕시


"상업용 부동산 공급은 넘치는데, 주거용 부동산은 공급이 부족하다."
지난 3월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의회에 출석해 미국 부동산 시장에 대해 내놓은 진단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자리잡으면서 사무용 건물 공실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주거용 부동산은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기존 주택 소유자들이 매물을 내놓지도 않는데다 새로운 집을 짓는데 드는 비용도 비싸졌기 때문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해결책은 간단해보입니다. 상업용 부동산을 주거용으로 바꾸는겁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은 잘 벌어지지 않습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사무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바꾼 곳은 전체의 0.5%에 불과합니다. 오피스 공실률이 치솟기 전인 코로나 팬데믹 이전(0.4%)과 비교해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새로 지어진 다세대 임대주택(멀티 패밀리)이 대략 46만8000채인데, 이 가운데서 오피스가 주거용으로 전환된 가구는 2만채 뿐입니다. 사무용을 주거용으로 바꾸는, 언뜻 간단해 보이는 해결책은 왜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걸까요?

○돈 안되는 사무용, 돈 되는 주거용

사무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바꿀만한 시장의 동기는 충분합니다. 부동산 개발사 입장에서 주거용은 돈이 되고, 사무용은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무용 건물의 수익성은 날로 악화하고 있습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주요도시 사무용 건물 공실률은 19.6%에 달합니다. 집계가 시작된 1979년 이후 최고치입니다. 이렇게 사무실이 공실률이 높게 치솟은 건 1986년과 1991년(19.3%) 뿐입니다. 부동산 종합서비스업체 PD프로퍼티스의 토니 박 대표는 "뉴욕 맨해튼 기준으로 상태가 가장 좋은 사무용 건물에 해당하는 클래스A는 수요가 많아 아직도 수익성이 좋다"면서도 "클래스B나 C로 내려가면 절반 이상은 공실로 비어있는 상태가 수년 째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주거용 부동산은 없어서 못 파는 지경입니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파네핀토 프로퍼티스의 조셉 파네핀토 대표는 "회사에서 운영중인 뉴저지주와 뉴욕주의 주거용 빌딩 10여곳의 임차율은 99.5%에 달한다"고 미국 주거용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한 마디로 정의했습니다. 주거용 빌딩은 거의 만실상태더라도 임차율은 보통 95% 수준을 유지합니다. 기존 임차인이 나가고 새로운 임차인이 이사오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비어있는 기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임차율이 99%에 달한다는 건 잠깐의 공실도 없을정도로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높은 상황이라는 게 파네핀토 대표의 설명입니다.

사무용의 공급과잉과 주거용 부동산의 공급부족이 이어지면서 수익성 격차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주거용 부동산 수익률을 사무용 부동산 수익률로 나눈 '주거용 부동산 수익률'은 20년 전 0.6에서 최근 0.8까지 치솟았습니다. 사무용 부동산 수익성이 떨어지고, 주거용 부동산 수익성이 높아진 결과입니다.


○사무용 건물의 주거용 변신이 어려운 이유

'돈 안되는' 사무용 건물을 '돈 되는' 주거용 건물로 바꾸는 일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입니다. 일단 오피스 건물의 뼈대를 유지하면서 주거용 건물에 적합하도록 구조를 바꾸는 게 생각보다 비쌉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창문입니다. 주거용 부동산에는 방과 거실에 반드시 창문이 있어야합니다. 수요자들이 창문이 있는 집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법적으로도 창문이 없는 공간은 방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통상 아파트같은 주거용 부동산은 성냥갑처럼 얇은 직사각형 형태나 'ㄱ자', 'ㄷ자'처럼 창문을 많이 낼 수 있는 형태로 짓습니다. 창문을 따라 최대한 많은 호실을 배치하기 위해섭니다.
사무용 건물은 다릅니다. 보통 땅 크기에 맞춰 'ㅁ자'로 짓습니다. 사무실은 주거용 건물과 달리 공간을 잘게 쪼개지 않습니다. 'ㅁ자'로 크게 지어도 가운데 공간이 비지 않고 사무용 공간으로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차이에서 옵니다. 'ㅁ자'로 크게 지어진 사무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바꾸려면 테두리의 창문을 따라 호실을 배치해야합니다. 그렇게 되면 가운데에는 큰 공간이 비게됩니다. 건물의 가운데 부분이 사용하기 어려운 '죽은 공간'이 되는겁니다.

물론 해결책은 있습니다. 뉴저지주 포트리의 한 주거용 건물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Fiat'라는 브랜드를 달고 이르면 올해 상반기 임대를 시작할 이 건물은 십여년째 비어있던 건물 두 동을 한 부동산 개발업체에서 매입하면서 주거용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은행이 임차해 쓰던 사무용 공간을 주거용으로 바꾸면서 건물 가운데 공간을 임차인을 위한 편의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짐이 많은 입주민이 사용할 수 있는 창고, 영화관, 공유 사무공간처럼 창문이 없어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가운데에 배치했습니다. 임대인 편의 시설을 추가해 임대료를 높여받을 수 있고, 창고 등 시설을 이용할 때는 비용을 부과해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한겁니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한 주거용 건물은 창문을 따라 작은 호실을 여러개 만드는 방법을 썼습니다. '원룸(스튜디오)'형식의 호실을 만들되, 창문 뒤로 방이 길쭉하게 이어지도록 설계해서 건물 가운데쪽의 비는 공간을 없앤겁니다. 파네핀토 대표는 "사무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변경할 때는 스튜디오나 원베드처럼 작은 호실(유닛)을 배치하는 게 효율적"이라며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수요를 감안해도 작은 호실을 많이 공급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건물 형태에 따라 가운데를 뚫어서 정원을 조성해 방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꾸밀 수도 있다"며 "기존 구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찾는 게 용도변경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선 배치나 상하수도 설계를 모조리 다시 해야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주거용 부동산은 한 호실마다 부엌과 화장실이 들어가야합니다. 한 층에 화장실이 두어개 배치되는 사무용 공간과는 다릅니다. 엘리베이터 개수부터 층고, 비상구 위치와 개수까지 사무용과 주거용 부동산에 다르게 적용되는 소방 규제와 건축 규제도 모두 맞춰야합니다.

규제 비용도 문제입니다. 뉴욕주를 비롯한 대부분 지역의 규제 당국은 땅의 '팔자'를 정해놓습니다. 주거용인지 상업용인지 혹은 둘 다로 쓰일 수 있는지 등 건물이 세워진 위치에 따라 용도를 바로 변경할 수 있는지, 혹은 용도 변경을 요청해야하는지가 달라집니다. 박 대표는 "뉴욕주에 용도 변경을 요청하고 승인을 받으려면 적어도 3~4년이 소요된다"며 "때문에 주거용과 상업용 모두로 쓸 수 있어서 용도를 변경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있는 건물이 주로 용도 변경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비용을 모두 지불하면서도 주거용으로 바꿨을 때 수익이 날 수 있는 건물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어진지 오래되고 리모델링도 이뤄지지 않은 건물 △오랜 기간 비어있었던 건물 △가격이 크게 떨어진 건물 △용도변경이 바로 가능한 건물 △입지가 좋아 입주 주거용 수요가 확실한 건물 등 다양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몇몇 사무용 건물에서만 용도 변경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여러 조건을 감안했을 때 미국 내 사무용 건물 가운데 0.8%만이 주거용 건물로 전환했을 때 수익성을 맞출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정책 전환 서두르는 뉴욕시

다양한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사무용 부동산을 주거용으로 변경하는 게 뉴욕 부동산 개발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게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뉴욕시가 정책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주거용 주택을 늘리기 위해 '시티 오브 예스(City of Yes)' 정책을 내걸고 있습니다. 공공주택 등 뉴욕시에 50만명이 추가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사무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변경하기 쉽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것도 핵심 내용 중 하나입니다. 예를들어 현행 규정은 1961년 이후 건설된 건물을 용도변경 하는 것을 막고있는데 이를 1990년 이후 건물로 규제를 완화해주는 식입니다. 뉴욕시가 초안을 짠 이 법안은 뉴욕시 도시계획위원회 검토를 거쳐 이르면 연말께 시의회에서 표결을 거쳐 시행될 예정입니다. 파네핀토 대표는 "건물을 새로 짓는 것 보다 기존 건물을 활용해 용도를 변경하면 경제적 측면에서도 효율적이짐만 환경보호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며 "정책적 지원이 늘어나면 사무용 건물의 주거용 전환이 지금보다 훨씬 본격화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뉴욕 = 나수지 특파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