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렬하고 스펙터클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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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황지원의 오페라 순례매년 여름 북이탈리아의 고도(古都) 베로나에서는 야외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고대 로마인들이 검투사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건설한 장대한 스케일의 ‘운동장’은 현대에 이르러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한 야외 오페라 무대로 변신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벌써 100년이 넘은 이 페스티벌이 매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무대에 올리는 오페라가 있으니, 바로 베르디의 대표작 <아이다 (Aida)>이다.
주세페 베르디 와 ‘개선 행진곡’
오페라 역사상 가장 찬란한 스펙터클
작품은 고대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왕국 간의 처절한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집트의 젊은 장군 라다메스(테너)는 에티오피아 군대의 침공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한 대장군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그가 남몰래 사랑을 키워가던 이는 공교롭게도 에티오피아 출신. 그것도 지금은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메조 소프라노)를 모시는 시녀 아이다(소프라노)이다. 공주 암네리스 또한 늠름하고 잘 생긴 장군 라다메스를 사모하고 있으므로, 세 사람의 젊은이들은 자연스레 삼각관계를 이루게 된다. 문제는 아이다의 진짜 신분이다. 전쟁통에 포로로 끌려와 지금은 시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에티오피아의 공주였던 것.전쟁이 날로 격화되는 가운데 암네리스 공주 또한 아이다와 라다메스 간의 묘한 분위기를 눈치 챈다. 공주는 라다메스가 전사했다는 거짓 소식을 흘렸다가 곧이어 그가 승전하여 살아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다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환호성을 지르자, 비로소 암네리스는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고 엄청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처절한 전쟁의 와중에도 불꽃 튀는 삼각관계의 갈등이 클라이막스로 치달을 즈음 저 멀리 취주악대의 팡파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에티오피아 군대를 괴멸시킨 이집트 군이 수천 명의 포로들을 이끌고 보무도 당당하게 개선한 것이다. 저 유명한 ‘개선 행진곡 (Marcia trionfale)’이다.
이때 무대 위의 모든 솔리스트들이 저마다의 심정을 노래한다.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놀란 심정의 아이다, 라다메스와 맺어질 생각에 들뜬 암네리스 공주, 개선장군이면서도 아모나스로의 웅변에 공감하는 라다메스와 전쟁포로들은 남김없이 척살하라고 주장하는 강경파 제사장 람피스 등 솔리스트들의 목소리가 하나둘씩 더해진다. 궁극에는 무대 위의 모든 솔리스트들과 백 여명의 합창단이 한데 뒤엉켜 태풍처럼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극장 전체로 날려 보내며 최후의 합창으로 발전한다.<아이다> 2막의 ‘개선 행진곡’ 장면은 오페라 역사상 가장 스케일이 크면서도, 인물들 각자가 처한 상황과 이념, 태도에 따라 디테일한 감정선 또한 잘 살아 있는 실로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가히 베르디가 창조한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렬한 스펙터클 씬이다.
결국 <아이다>는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오페라 속의 이 젊은 연인들은 군대와 전쟁, 정복과 파괴라는 전체주의적 광기 속에 희생되어 숨을 거두고 만다. 환갑을 눈앞에 둔 베르디는 순수한 젊은이들의 희생을 통해 한 세대 후 이탈리아반도에 대두될 파시즘의 어두운 그림자를 경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황지원 오페라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