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조성진 보유국에 '국대급 음악제' 하나 없다
입력
수정
[세계도시는 문화전쟁-100년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
⑩'허술한 지원 체계' 흔들리는 韓 음악제
강원도,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산 대폭 삭감
동절기 음악제는 지난해 아예 간판 내려
해외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대접
예산 증액 등 공격적인 투자 나서는데
한국만 지지부진…"전략적 기획 및 지원 필요"

폴란드 출신 거장 작곡가 겸 지휘자인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생전(1995년)에 남긴 말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에도 통영국제음악제(2002년), 평창대관령음악제(2004년), 서울국제음악제(2009년) 등 굵직한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이 잇따라 생겨났지만, 여전히 해외 관광객 무리가 찾아올 정도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음악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난해 집계된 통영국제음악제와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관람객 수는 각각 1만3000여 명, 1만300여 명에 그친다. 이들보다 늦게 생겨난 일본의 클래식 음악 축제인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의 지난해 관람객 수(3만3000여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국가적 차원의 중장기적 육성 전략 부재, 지방자치단체의 졸속 예산 삭감 등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고질적 병폐가 문화예술 축제 운영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뿌리내린 결과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한국은 피아니스트 임윤찬, 조성진 등을 배출하며 ‘콩쿠르 강국’이란 타이틀을 얻었지만, 부족한 인프라와 좁은 저변 등을 고려했을 때 ‘클래식 강국’으로 올라서기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며 “그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을 보여주는 클래식 축제에 대한 범정부적 차원의 기획·지원 체계가 허술한 건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평가가 나온다.
예산 삭감에 고통받는 한국판 ‘아스펜 음악제’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은 웅장한 산세와 푸른 빛의 광활한 초원, 시원한 바람 덕분에 ‘한국의 알프스’란 별칭이 붙은 휴양지다. 이 도시는 매년 7~8월만 되면 ‘한국 클래식 음악의 메카’로 변신하곤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강효·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 등 세계적 연주자들이 예술감독을 지낸 명문 클래식 음악 축제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이맘때 열리면서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한때 미국 콜로라도 로키산맥의 폐광촌을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킨 ‘아스펜 음악제’의 한국판이라 불릴 정도로 높은 명성을 떨쳤다.
2018년엔 예술위로부터 3억원가량을 지원받았지만, 2019년 국비 지원금이 전년 대비 73% 삭감된 8000만원으로 책정되면서 존립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류재준 예술감독은 “음악제는 기본적으로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한데, 예산이 이렇게나 흔들리면 안정성을 지닐 수가 없다”며 “정권을 초월해 클래식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내가 먼저 육성할래” 선진국은 너도나도 달려드는데…한국만 미적지근
선진국에서 클래식 중심의 문화예술 축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대접받는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낙수효과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창출하는 연간 수입(2017년 기준)은 1억8300만유로(약 2700억원)에 달한다. 축제를 위해 오스트리아를 찾는 관광객은 보통 6~7일간 체류하는데, 그 영향으로 2800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발생한 세금 수입만 7700만유로(약 1100억원)로 추산된다. 영국은 에든버러에서의 문화예술 축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860만파운드(약 148억원)의 예산을 증액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