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부커상 수상 욕심나..다음엔 노벨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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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선정"'백척간두진일보'란 말이 있습니다.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서 한 걸음 더 올라가야 하는 거죠. 원로 작가로서 요즘 그런 기분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노동자의 삶 꿰뚫어
"근대의 극복과 수용에 초점 맞춰"
황석영 소설가(81)는 17일 <철도원 삼대>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것과 관련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17년 <수인>이란 자전을 발표한 뒤 온 몸의 내장이 다 빠져나간 느낌처럼 더이상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말년에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레지던시(예술가들이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는 공간)에 들어가 <철도원 삼대> 연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이번 작품은 황 작가가 앞서 2019~2020년 한 웹진에 <마터 2-10>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소설이다. 당시 매주 두번, 총 원고지 50매 분량의 소설을 연재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부터 삼대에 걸쳐 철도업에 종사한 노동자 가족과 오늘날 공장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해고 노동자인 4대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 100년에 담긴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다루고 있다. 연재 당시 제목이자 영문판 제목이기도 한 '마터 2-10'은 '마터 2형 10호'란 뜻으로,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1943~1946년 운영한 증기기관차 이름이다.
황 작가는 이번 작품을 비롯해 그동안 쓴 작품이 '근대의 극복과 수용'이란 주제로 수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의 근대는 왜곡된 근대"라며 "외양은 포스트모던 사회에 진입한 모양을 갖췄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근대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분단이란 장애물로 근대적 민족국가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본다"며 "근대를 극복하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근대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현대성을 발견하는 경향은 세계 문학의 한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황 작가는 "요즘 100년을 거슬러 현재를 관통하는 작품이 사방에서 나온다"며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 들어왔는데, 목표를 잃고 불안정한 이행기에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경향이 발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객지>, <삼포가는 길> 등으로 국내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황 작가는 본인의 소설을 우리 전통 구비문학에 기반을 둔 '민담 리얼리즘'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소설을 분석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내 작품을 분석하는 비평가들이 있는데, 사실과 조금 다르다고 본다"며 "전통 민담, 설화, 전설 등 민중의 일상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우리 고유의 서사를 소설적 기법으로 구현한 게 내 작품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최근 전북 군산에 작업실을 마련한 황 작가는 은퇴 전까지 세 작품을 추가로 집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600년 된 나무 이야기인 <할매>(가칭)와 1920년대 연변에서 일어난 '15만원 (탈취 의거) 사건'의 청년과 70대 노인이 된 홍범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마지막으로 동학사상을 집대성한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이야기다.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은 오는 5월 2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황 작가는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주위에서 욕망을 저어하지 말라고 해 이번엔 '내가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려고 마음을 바꿨어요. (부커상을) 받으면 그 다음에는, 다음 작품을 열심히 써서 그 다음 상(노벨상)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