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금으로 밀린 월급 지급"…'대지급금 제도' 수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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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으로 밀린 월급 주고 벌금 조금 내면 그만"정부가 임금체불을 당한 근로자에게 사업주 대신 임금을 먼저 돌려주는 ‘대지급금’ 지급 요건을 강화한다. 사업주가 허위로 근로자를 내세워 대지급금을 부정 수급하는 등 악용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1월 16일자 A25면 참조
간이대지급금 완화 이후 부정 수급 '급증'
간이대지급금 비중도 2021년 85.5%→지난해 94.2%
체불·대지급금 절차 개선안 이달안 발표
체불확인서 발급 기준이 강화
당사자 진술 만으로 대지급금 지급 안하기로
체불에 대해선 ‘시정지시’ 의무화
○대지급금 지급 요건 강화
1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이달 안에 대지급금 제도 개선안을 발표한다. 대지급금은 임금체불 근로자에게 정부가 우선 밀린 임금을 대신 지급(대지급)하고 나중에 사업주에게 해당 임금을 받아내는 제도다.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1년 ‘간이 대지급금’ 지급 요건이 완화된 후 부정 수급 사례가 늘자 제도 개선안이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회생절차 개시, 파산선고 등 사업주의 도산 사실이 엄격하게 입증돼야 지급되는 '도산 대지급금'과 달리 '간이 대지급금'은 간소화된 자료로 근로자의 사업장 근무와 체불 사실을 증명하면 바로 지급된다. 체불 피해 근로자의 신속한 권리구제를 돕는 차원에서 도입됐지만 부정 수급자들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개선안에 따르면 고용노동 관서가 발급하는 체불확인서 발급 기준이 엄격해진다. 현재는 임금체불 사업주와 체불 근로자 간 체불이 있었다는 진술이 일치하면 대지급금 지급에 필요한 체불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런 ‘당사자 진술’ 요건이 사라진다. 신속한 지원을 위해 임금체불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다소 부족해도 당사자 진술에 근거해 대지급금을 주다 보니 부정 수급 사례가 늘었다는 게 고용부 판단이다.체불 금액, 재직 사실을 증명하는 ‘임금 자료’도 객관적 자료로 한정한다.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임금 대장, 카카오톡, 교통카드, 사업장 출입 내역 등 체불 임금을 증명하는 약식 자료만 제시해도 대지급금을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고용보험, 국민·건강보험 등 객관성 있는 자료를 내야 한다.
체불확인서는 체불에 대한 ‘시정지시’ 이후 발급한다. 확인서 발급 후 임금체불에 대해 시정지시 등 조치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관행을 고치기 위해서다. 10인 이상 임금체불 사업장은 사업주에게 재산목록 제출을 요청하고, 사업주가 이행하지 않으면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이 신설된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이달 근로감독 집무규정을 개정하면 곧바로 제도 개선안이 시행된다”고 설명했다.
○사업주별 지급 한도 설정해야
정부가 제도 개편에 나서는 것은 간이 대지급금 지급 요건 완화 후 부정 수급자도 불어나고 있어서다. 지난 3월 고용부 감독 결과 가족, 지인과 같은 허위 근로자를 고용한 것처럼 임금대장 등을 꾸민 다음 체불을 신고해 간이 대지급금을 챙긴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이렇게 챙긴 11억3500만원으로 건물을 올린 사업주까지 있었다.관공서로부터 발급받는 일종의 ‘임금체불 증명서’인 체불확인서 중 간이 대지급금 청구 용도로 발급된 비율은 2021년 46.1%에서 지난해 85.6%로 급등했다. 전체 대지급금 중 간이 대지급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85.5%에서 지난해 94.2%로 상승했다. 한 근로감독관은 “간이 대지급금 지급 요건을 완화한 이후 자신이 내야 할 임금을 대지급금으로 해결하려는 사업주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지난해 대지급금 총지급액은 6869억원으로 1년 전보다 27.9% 증가했다. 역대 최고 규모다.
국가가 대지급금 중 체불 사업주로부터 받아낸 금액의 비율인 ‘회수율’은 간이 대지급금의 경우 16.4%로 도산 대지급금(41.1%)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다. 이로 인해 대지급금 재원인 ‘임금채권 보장기금’ 적립금은 2022년 6172억원에서 지난해 4670억원으로 줄었다. 한 근로감독관은 “사업주별 대지급금 지급액 한도와 횟수 제한이 없어 이를 악용한 반복 수급이 기승을 부린다”며 “회수율을 높일 담보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금체불 강제수사도 활성화
한편 정부는 감독관 집무규정 개정 등을 통해 임금체불 신고사건에 대한 시정지시 비율도 늘린다. 임금체불 신고사건에서 '시정지시'를 하는 비율은 2019년에 5.02%에서 점점 떨어져 지난해에는 3.12%에 그쳤다.이는 간이 대지급금의 특성 때문이다. 간이 대지급금 신청에는 사업주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때문에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처벌 불원서'를 써주는 것을 협조 조건으로 내거는 경우가 많다. 임금체불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처벌 불원)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이기 때문이다. 근로자도 울며 겨자먹기로 불원서를 써줄 수밖에 없다.
이런 '불벌' 관행 탓에 고용부도 체불 신고 사건에서 굳이 사업주에게 시정지시를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러다 보니 임금체불 신고가 수사 요청이 아니라 간이대지급금 지급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는 평가다. 이에 앞으로는 임금체불 확인 시 의무적으로 시정지시를 하고 이에 사업주가 불응 시 별도 사법처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밖에 정부는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체포영장 신청 기준도 신설한다. 재산을 은닉하는 등 고의·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향으로 신청 기준도 재정비한다.
또 체불 관련 동종 전과가 있거나 지급 여력이 있는데 고의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증거가 명백한데도 혐의를 부인하는 사업주에 대해선 검찰에 '정식 의견서'를 송치한다. 이 전에는 금액이 적은 체불 사건의 경우 검찰이나 법원 출석 없이 벌금만 납부하면 사안이 종료됐다.정부 관계자는 "벌금액이 체불액 대비 20%도 안되는 게 현실"이라며 "걸려도 벌금만 내면 된다는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