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은 화해와 평화를 남기고 별나라로 떠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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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지중배의 삶의 마리아주-맛있는 음악뜬금없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베토벤의 어떤 교향곡도 푸치니의 어떤 오페라 아리아도 아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운전할 때나 그리고 하루의 일정들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꼭 들으며 흥얼거리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이다. 나와 가까운 지인들이 다 그 사실을 알 정도다. 그 가사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과 이야기들이 다 담겨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먼 옛날 어느 별에서 온 나. 세상에 백만송이 장미를 피워야 하는 사명이 있는데 그 장미는 진실한 사랑 할 때만 피어난다. 그 진실한 사랑으로 백만송이 장미를 피어나게 하면 드디어 다시 나의 별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이 노래는 나에게 항상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하고 애절하게 하며 내가 음악을 할 때 다양한 영감을 준다. 사람과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일 것이다. 또한 '사랑'은 우리에게 준 숙제이고 사명일 것이다. 아름다운 모습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애증, 빗나간 사랑, 질투 등 어두운 모습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존재이다.지난 수천년간 인간이 예술이라는 행위를 할 때 가장 많은 역할을 한 사랑은 젊은 남녀 간의 사랑 그중에도 수많은 장애물에 더욱더 격정적이지만 그 끝은 가슴을 메이게 하는 비극적 사랑이지 않을까. 나는 로맨스, 멜로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수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결론은 그들의 행복으로 끝나는, 그 이후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후에 지지고 볶고 싸우든 말든... 그래도 비록 그 끝은 비극이지만 러브 스토리의 고전은 로미오와 줄리엣일 것이다.곧 다가올 케네스 맥밀란 안무 작품인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 과정 중 안무와 연출을 체크하기 위해 영상자료를 보고 있었다. (프로코피에프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원래 그는 이 발레를 해피엔딩으로 하려 했었다) 너무 유명한 안무와 의상 그리고 무대여서 그러려니 보다가 어느 중세시대를 잘 그린 무대에 문득 올리비아 핫세가 줄리엣으로 나왔던 프랑코 제페렐리 감독의 영화가 떠올라 그 영화를 다시 보았다. 대사 한문장 한문장이 좋아서, 음악이 좋아서 수도 없이 봤던 영화였다. 어렸을 때에는 그 둘의 감정선만 따라갔다면 이제는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도 보인다.
▶▶▶(관련 기사) 유니버설발레단 40주년…ABT 서희와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내친김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20세기의 미국 베로나 비치로 옮겨 현대화시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주연한 영화도 다시 봐버렸다. 해피엔딩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은 마음 중 하나는 뜨겁게 눈물을 흘리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발레공연 준비한다고 해놓고 악보는 다 덮어두고 이렇게 영화 두 작품을 비교하며 보고 나니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연기한 죽음이 너무나도 허망하고 찢어지게 슬프게 다가왔다.
20여년 전 베로나 근처 트렌토(Trento)에서 콩쿨을 마치고 처음 이탈리아의 도시를 여행했던 곳이 베로나였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실존하지는 않았으나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나눴고 가상의 줄리엣의 집이 있는 그 도시에서 지내는 며칠은 나에게 이탈리아 음식문화에 눈을 뜨게 해준 도시였다. 베로나에서 두 사람은 슬픔을 간직한 채 떠났지만 현대의 베로나에서 그 두 사람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그 슬픔으로 인해 새로운 사랑이 싹트게 하는 도시였다.결론적으로 보면 그 둘의 희생으로 분명 몬테규가와 캐플릿가도 화해를 했을 것이고 현실의 사람들도 사랑이 가져다주는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깊은 비극은 아니지 않을까?
베로나의 어느 광장에 앉아서 슈퍼에서 산 별로 시원하지 않은 맥주를 마시는 20년 전의 내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 봤다. 지금보다 젊었던(어렸던) 그때의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분주하게 다니는 시민들? 아름답게 키스를 하고 있는 연인들? 그 젊은 연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손 잡고 있는 노부부? 그 노부부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일까?
영화 속 캐플릿가의 무도회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날 때 음유시인은 노래한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장미가 피고 지듯 젊음도 시드는 것’ 노래가 복선이 되어 그들의 장미는 피었고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불같은 진실한 사랑으로 백만송이 장미를 피워 작품 속 베로나 사람들에게 화해와 평화를 주고, 현실과 현대의 베로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설렘과 희망을 주고 그들의 별나라로 떠나지 않았을까?/지휘자 지중배
[심수봉-백만송이 장미]
▶▶▶(과거 공연 리뷰) 죽음조차 아름다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객석까지 지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