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은 화해와 평화를 남기고 별나라로 떠났겠지

[arte] 지중배의 삶의 마리아주-맛있는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
뜬금없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베토벤의 어떤 교향곡도 푸치니의 어떤 오페라 아리아도 아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운전할 때나 그리고 하루의 일정들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꼭 들으며 흥얼거리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이다. 나와 가까운 지인들이 다 그 사실을 알 정도다. 그 가사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과 이야기들이 다 담겨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온 나. 세상에 백만송이 장미를 피워야 하는 사명이 있는데 그 장미는 진실한 사랑 할 때만 피어난다. 그 진실한 사랑으로 백만송이 장미를 피어나게 하면 드디어 다시 나의 별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이 노래는 나에게 항상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하고 애절하게 하며 내가 음악을 할 때 다양한 영감을 준다. 사람과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일 것이다. 또한 '사랑'은 우리에게 준 숙제이고 사명일 것이다. 아름다운 모습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애증, 빗나간 사랑, 질투 등 어두운 모습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존재이다.지난 수천년간 인간이 예술이라는 행위를 할 때 가장 많은 역할을 한 사랑은 젊은 남녀 간의 사랑 그중에도 수많은 장애물에 더욱더 격정적이지만 그 끝은 가슴을 메이게 하는 비극적 사랑이지 않을까. 나는 로맨스, 멜로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수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결론은 그들의 행복으로 끝나는, 그 이후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후에 지지고 볶고 싸우든 말든... 그래도 비록 그 끝은 비극이지만 러브 스토리의 고전은 로미오와 줄리엣일 것이다.
랑코 제페렐리 감독의 영화 &lt;로미오와 줄리엣&gt; (1978) 포스터와 스틸컷 ©다음영화
곧 다가올 케네스 맥밀란 안무 작품인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 과정 중 안무와 연출을 체크하기 위해 영상자료를 보고 있었다. (프로코피에프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원래 그는 이 발레를 해피엔딩으로 하려 했었다) 너무 유명한 안무와 의상 그리고 무대여서 그러려니 보다가 어느 중세시대를 잘 그린 무대에 문득 올리비아 핫세가 줄리엣으로 나왔던 프랑코 제페렐리 감독의 영화가 떠올라 그 영화를 다시 보았다. 대사 한문장 한문장이 좋아서, 음악이 좋아서 수도 없이 봤던 영화였다. 어렸을 때에는 그 둘의 감정선만 따라갔다면 이제는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도 보인다.

▶▶▶(관련 기사) 유니버설발레단 40주년…ABT 서희와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 주연의 영화 &lt;로미오와 줄리엣&gt; (1996) 스틸컷 ©네이버 영화
내친김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20세기의 미국 베로나 비치로 옮겨 현대화시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주연한 영화도 다시 봐버렸다. 해피엔딩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은 마음 중 하나는 뜨겁게 눈물을 흘리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발레공연 준비한다고 해놓고 악보는 다 덮어두고 이렇게 영화 두 작품을 비교하며 보고 나니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연기한 죽음이 너무나도 허망하고 찢어지게 슬프게 다가왔다.

20여년 전 베로나 근처 트렌토(Trento)에서 콩쿨을 마치고 처음 이탈리아의 도시를 여행했던 곳이 베로나였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실존하지는 않았으나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나눴고 가상의 줄리엣의 집이 있는 그 도시에서 지내는 며칠은 나에게 이탈리아 음식문화에 눈을 뜨게 해준 도시였다. 베로나에서 두 사람은 슬픔을 간직한 채 떠났지만 현대의 베로나에서 그 두 사람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그 슬픔으로 인해 새로운 사랑이 싹트게 하는 도시였다.
이탈리아 베로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 주연의 영화 &lt;로미오와 줄리엣&gt; (1996) 스틸컷 ©네이버 영화
결론적으로 보면 그 둘의 희생으로 분명 몬테규가와 캐플릿가도 화해를 했을 것이고 현실의 사람들도 사랑이 가져다주는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깊은 비극은 아니지 않을까?

베로나의 어느 광장에 앉아서 슈퍼에서 산 별로 시원하지 않은 맥주를 마시는 20년 전의 내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 봤다. 지금보다 젊었던(어렸던) 그때의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분주하게 다니는 시민들? 아름답게 키스를 하고 있는 연인들? 그 젊은 연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손 잡고 있는 노부부? 그 노부부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일까?

영화 속 캐플릿가의 무도회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날 때 음유시인은 노래한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장미가 피고 지듯 젊음도 시드는 것’ 노래가 복선이 되어 그들의 장미는 피었고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불같은 진실한 사랑으로 백만송이 장미를 피워 작품 속 베로나 사람들에게 화해와 평화를 주고, 현실과 현대의 베로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설렘과 희망을 주고 그들의 별나라로 떠나지 않았을까?/지휘자 지중배

[심수봉-백만송이 장미]


▶▶▶(과거 공연 리뷰) 죽음조차 아름다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객석까지 지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