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보고·검증 시스템으로 환경규제 대응해야”
입력
수정
국경을 넘는 글로벌 환경 규제가 도입되면서 환경 경영 경계가 조직에서 제품으로 확장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포함한 광범위한 오염물질을 관리하기 위해선 환경 성과를 측정, 보고 검증하는, 이른바 MRV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검증은 공신력을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이다[한경ESG] 러닝 - ESG클럽 월례포럼“환경성과는 전 주기적 개념으로 다뤄야 한다. 제품과 조직의 환경성과를 환경발자국 측면에서 측정, 보고, 검증해야 한다. 대다수 환경규제가 지닌 고민도 이 지점에 있다. MRV(측정, 보고, 검증) 시스템을 활용하면 글로벌 환경규제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지난 4월 17일 서울시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ESG 클럽 월례포럼’에
서 홍길환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수석연구원이 한 말이다. 그가 말하는 MRV는 측정(Measuring), 보고(Reporting), 검증(Verification)의 약어다.
비즈니스 전 주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포함한 오염물질을 객관적·과학적 방식으로 측정하고, 공시하며, 검증하는 프로세스가 ‘MRV 시스템’이다. 이날 강연에서는 제품의 탄소발자국 측정과 검증을 다뤘다.
‘제품’ 단위 탄소 관리 요구탄소발자국을 MRV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주요 환경규제가 환경성과에 대한 전 주기적 관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 EU 집행위원회는 2021년 12월 제품 및 조직의 전 주기 환경성과를 측정하고 공유하는 권고안을 만들어 배포했다. 조직의 운영 통제를 벗어난 온실가스(스코프 3)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EU가 단계적으로 시행 중인 탄소국경조정제(CBAM)나 배터리법, 에코디자인 규정도 대표적 탄소발자국 규제다. CBAM은 철강, 시멘트, 전기 등 제품 생산 과정을 추적한다. 배터리법 역시 배터리 단위 규제가 골자다. 이 밖에도 에코디자인 규정 등 다수 규제가 제품의 탄소발자국 관리를 요구한다.
환경경영의 경계가 사업장에서 공급망으로 확대되고 있다. 직간접 온실가스배출량(스코프 1·2) 외에도 스코프 3(총외부배출량)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해진 이유다. 특히 후방산업(업스트림)에 대한 관리가 요구된다. 홍 수석연구원은 “조직의 탄소배출량에서 제품의 탄소발자국으로 글로벌 환경규제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MRV로 환경규제 대응
환경규제는 관리 범위가 각각 다르다. CBAM은 공정 직접배출, 공정에서 소비되는 전력으로 인한 간접배출, 전구물질로 인한 배출로 타 규제와 비교해 비교적 협소한 배출량 산정 범위를 갖고 있다. MRV 시스템은 제품 탄소발자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해 복수 규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출발은 제품 단위 배출량 측정이다. 제품 탄소발자국(PCF) 측정은 ISO 14067, GHG 프로토콜, PAS 2050이 주로 사용된다. 이들 표준은 제품 설계, 원재료 추출, 제조,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의 환경영향을 정량화해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한다. 그중 ISO 14067은 제품의 탄소발자국 정량화를 위한 요구사항과 원칙을 표준화해 범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홍 수석은 업스트림(후방산업)과 스코프 1·2, 다운스트림(전방산업)으로 나눠 각기 다른 산정 방식을 활용할 것을 권고한다. 업스트림의 경우 실데이터를 활용해 배출량을 측정하기 어려운 만큼 단기적으로 전과정 목록 데이터베이스(LCI DB)를 우선 활용하고, 이후 주요 구매 업체별 조사와 실사를 통해 직접 데이터를 취합하는 방식이다.
스코프 1·2의 경우 기업의 시스템을 연계해 직접배출은 실투입 기준으로 산출하고, 공정 전력은 주요 공정별 전력 사용량을 제품에 할당하는 등 방식을 활용한다. 제품 사용 과정 배출은 제품 유형별 사용 데이터 가정을 통해 산출하는 등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제품 탄소발자국을 측정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제품 탄소발자국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측정 목표와 범위를 정해야 한다. 이후 측정 경계를 설정하고 제외 기준(일반적으로 95% 이하)을 마련한다. 시간적·지리적·기술적 범위를 고려해 현장 데이터, 1·2차 데이터를 취합하고, 전과정 목록 분석을 통해 투입물과 산출물을 종합해 정량화하는 단계를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마치면 개별 제품에 데이터를 할당해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산정할 수 있다.
검증으로 공신력 확보 필요
제3자 검증을 통해 MRV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다. 일부 환경규제는 검증을 마친 제품 탄소발자국 공시를 요구하며, 검증을 마친 공신력을 확보한 정보는 공시 품질을 높인다. 제품 탄소발자국 검증기관은 국제표준인 ISO 14064 파트 3이 주로 활용된다.
현재 한국인정기구(KOLAS)의 인정을 받은 정부 기관과 연구 기관 등이 ISO 14064를 활용해 탄소발자국을 검증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역시 KOLAS로부터 제품 탄소발자국과 관련해 공인 검증기관 인정을 받았다. 다만, 이러한 국내 기관이 수행한 검증은 아직 국내에서만 인정받고 있다.
KOLAS는 EU CBAM, EU 배터리법 등 해외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인정기구포럼(IAF)으로부터 탄소발자국 검증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평가를 5월 중 진행할 예정이다. 홍 수석은 “올 하반기에는 우리의 검증 결과가 외국에서도 통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홍 수석의 말에 따르면, 제품 탄소발자국 검증과 조직 온실가스배출 검증의 보증 수준이 다르다. 그는 제품 탄소발자국 검증은 기업의 내외부 데이터가 필요하며, 이러한 모든 데이터에 대해 합리적 보증 수준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보증 수준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내부의 데이터도 1차 데이터 수집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서다.더불어 그는 “주요 배출원과 원료 투입, 생산량 등 공정별로 통합하지 않고 세부적으로 인벤토리를 필수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며 “매년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체 검증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검증을 통해 대내외 공신력을 확보해 환경규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