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위기는 곧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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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필자는 최근 스페인의 ‘아르코 아트페어’에 다녀왔다. 이제 곧 ‘아트 부산’과 ‘프리즈 서울’ 페어도 한국에서 열린다. 인구가 약 5000만 명인 우리나라에 현재 아트페어가 수십 개 열리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왜 이렇게 많은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을까?
필자가 10여 년 전 참석한 아시아 큐레이터들의 모임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고 갔다. ‘수없이 창궐하는 아시아의 아트페어와 비엔날레 중에서 어느 것이 경쟁력이 있고, 몇 개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내용이었다. 1980년대 이후 수많은 아트페어와 비엔날레가 생기면서 세계 미술계가 급성장했지만, 출현과 퇴장을 반복하며 전체적으로는 그 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우리나라만 빼고 말이다.세계 아트페어 상황을 살펴보자. 경기 변동과 미술시장이 연동하면서, 많은 아트페어가 합종연횡하며 지형도를 조정하고 있다. 로컬 아트페어와 글로벌 아트페어의 역할이 점점 명확하게 나뉘고, ‘바젤’과 ‘프리즈’라는 두 거대한 아트페어는 거대 권력으로서 승자 독식하며 그 영역을 전 지구로 확장하고 있다. 한때 세계 5대 아트페어라고 불린 ‘시카고 아트페어’와 ‘아르코 아트페어’는 로컬 아트페어로 그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피악 아트페어’는 최근에 바젤에 인수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아트페어들은 어떤 생존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까? 첫째는 국내 화랑과 소장가만을 대상으로 한 로컬 아트페어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다른 아트페어가 다루지 않는 예술 상품과 시장을 개척해 세계 미술계에서 다른 위치를 확립하는 것이다. 셋째는 바젤과 프리즈 등 글로벌 아트페어와 경쟁하며 동등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무엇이 됐든 앞으로 미술시장에 필연적으로 조정기가 올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수많은 군소 비엔날레도 마찬가지다. 상업주의의 관계망에 포섭돼 관광상품 행사로 전락하거나 지역 축제에만 머무르기 싫다면, 세계 미술계에서 차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글로컬화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현대미술계는 비엔날레와 아트페어가 공생하며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도 정부 주도의 국제 문화행사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거대 권력이 만들어놓은 파이를 그저 나눠 먹는 식의 경쟁은 이제 의미 없음을 자각해야만 한다. 오히려 과거 유미주의와 상업주의 예술계가 만들어놓은 문화 생태계를 넘어서, 대안적인 국제 예술행사를 모색하고 제안하며 우리가 새로운 파이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동시대는 우리가 세계 예술을 선도할 기회의 틈을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