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똥 맞으며 1시간 줄 서서 오픈런…독일관 정문이 흙더미에 덮인 사연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리뷰
국가관 하이라이트 - ① 독일관

터키계 이민자, 유대인 등 '이방인' 주목
몬드타그, 터키 토양으로 나치 독일 흔적 지워
바르타나, 유대인 전통 설화로 인류 위기 경고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지난 20일 개막한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의 주제다. 2년 전 행사가 '비백인 여성'을 조명했다면, 올해 베네치아는 골목마다 '이방인'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팬데믹과 전쟁,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사람들 사이 관계가 멀어진 상황. 전 세계 미술인들은 그동안 소외됐던 이방인의 삶에서 무너진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해답을 찾았다.

외국인 노동자부터, 원주민, 소수 민족, 피란민까지. 각 나라가 해석한 이방인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그중 올해 미술전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 국가관 전시를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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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독일관 외관 전경. 전시장 입구가 흙과 돌무더기로 막혀있다. 튀르키예계 독일 작가 에르산 몬드타그가 이방인 노동자의 역사를 기리며 설치한 작품이다. /베네치아=안시욱 기자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중심 행사장인 자르니디 정원. 주요 국가관이 모여 있는 이곳에 때아닌 '새똥 주의보'가 발령됐다. 공식 개막 5일 전 사전 공개 기간부터 연일 오픈런을 기록 중인 독일관 얘기다. 야외에서 1시간, 내부 설치물을 보기 위해 또 1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하늘에서 떨어지는 '봉변'에 당하는 방문객이 속출한 것.

독일관은 이런 기다림과 위험마저 감수할 만한 전시다. 건축가이자 큐레이터 카글라 일크(47)가 예술 감독을 맡아 기획한 독일관 제목은 '문턱(Thresholds)'. 지난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 <타임 쉘터(Time Shelter)>에서 영감을 얻은 제목이다.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독일관 전시장 입구가 흙과 돌무더기로 막혀있다. 튀르키예계 독일 작가 에르산 몬드타그가 이방인 노동자의 역사를 기리며 설치한 작품이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공
감독의 이력과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올해 독일관은 입구 문턱부터 평범하지 않다. 정문이 있던 자리는 무너진 듯 흙과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관객은 마치 불청객처럼 건물 오른쪽에 난 쪽문으로 입장해야 한다.입구의 공사 현장은 튀르기예계 독일 작가 에르산 몬드타그(36)가 일부러 연출한 작품이다. 흙과 돌무더기는 작가 조부의 고향인 튀르키예 아나톨리아에서 퍼왔다. 작가의 할아버지는 1968년 독일로 이주했던 노동자로, 산업화 고도 발전 시기 석면 공장에서 일하다가 암으로 사망했다. 작가는 "이제 독일관은 영원히 튀르키예 이방인들의 토양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독일관 대표작가 에르산 몬드타그의 '이름 없는 이를 위한 기념비'에서 연기자가 작가 가족의 과거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베네치아=안시욱 기자
전시장 내부엔 3층 규모 가건물 설치작품 '이름 없는 이를 위한 기념비(Monument to an Unknown Person)'가 들어섰다. 석탄 더미가 가득한 1층을 지나 2층의 지저분한 부엌과 침실, 3층의 옥상으로 이어진 공간이다. 가난한 이민자 가족의 삶의 터전을 묘사한 이곳에 다섯명의 배우가 작가의 조부와 부모, 작가 자신을 연기한다.

몬드타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독일관의 역사를 아는 게 좋다. 파시즘 체제를 선전하려던 나치 독일은 1938년 독일관을 화려하게 리모델링했다. 지난 2022년 독일관 대표작가로 출전했던 마리아 아이크혼이 나치의 잔상을 지운다며 건물 바닥을 뜯어냈다. 상처로 얼룩진 채 남아있던 독일관 바닥이 올해 이방인의 토양으로 채워진 것이다.
독일관 대표작가 에르산 몬드타그 '이름 없는 이를 위한 기념비'에서 연기자가 작가 가족의 과거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공
독일관에 함께 작품을 건 야엘 바르타나(53)의 존재감도 작지 않다. 유대인 작가인 그는 이스라엘 전통 개념 '티쿤 올람(히브리어·세상을 개선한다)'을 주제로 '국가의 빛(Light to the Nations)'을 선보였다. 거대한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대형 구조물과 여기 탑승해 지구를 떠나는 인류를 담은 영상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쟁과 환경 파괴 등으로 인류가 디스토피아의 '문턱'에 도달했다는 점을 경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반적인 플롯은 인간의 욕심으로 신의 심판을 받은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 서사와 유사하다. 영상 속 인류가 떠난 자리에 남은 동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은 오히려 유토피아에 가깝게 묘사된다. '세상을 개선한다'는 대의(大義)에 인간이 낄 자리가 없다는 의미일까.
독일관 대표 작가 '야엘 바르타나'의 '국가의 빛'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공
올해 독일관의 문턱은 베네치아 본섬 바깥으로도 활짝 열렸다. 베네치아 동쪽 무인도인 세토사 섬에 사상 처음으로 분관을 열면서다. 로버트 리포크 등 작가 세 명이 사운드 작업을 선보였는데, 주변 섬의 생태계와 자연스럽게 조응한다며 호평받았다. 일크 예술감독은 "섬에는 경계가 없고, 소리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베네치아=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