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필 지휘 김은선…"단원들 팀워크 덕분에 원하는 연주 나왔죠"

지난 19일 베를린필과 데뷔 무대를 마치고 인사하는 김은선. 베를린필 제공 (c)Bettina Stöß
"왜 세계 최고의 악단인지 알 수 있는 경험이었죠. 여러번 연주할수록 개별 단원들의 재량이 더 나왔고, 호흡도 갈수록 좋아지는 게 느껴졌어요. "

지난 18일~20일 한국 여성 최초로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기공연 무대에 선 마에스트라 김은선(44·사진)이 연주를 마치고 이같은 소감을 전했다. 지난 21일 화상으로 만난 김은선은 베를린필 데뷔 공연을 갓 마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음악에 집중하느라 정확한 반응은 모르겠지만, 악장 간 박수가 계속 나왔어요. 마지막 악장까지 끝나고 박수를 치는 게 룰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주가 괜찮으니 자연스럽게 (박수가)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김은선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최초의 역사를 쓰고 있다. 연세대에서 작곡을 전공하다 대학 4학년 때부터 지휘와 인연을 맺은 김은선은 현재 유수의 유럽과 미국 무대에서 활약중이다. 2010년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오페라극장에서 여성 최초로 지휘봉을 잡았고, 2019년에는 여성 지휘자 최초로 샌프란시스코오페라(SFO) 음악감독으로 발탁됐다. SFO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이어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큰 대규모 오페라단이다.

지난해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클래식계를 들썩이게 했다. 3대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베를린필이 그를 객원 지휘자로 지명하면서다. 베를린필 포디움에 아시아인이나 여성이 서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아시아 여성 중에서는 일본인 오키사와 노도카가 아카데미 장학생으로 무대에 섰고, 한국인 지휘자 중에서는 정명훈이 유일하다. 최근 김은선은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까지 데뷔하며 각국의 최정상 포디움을 꿰차하고 있다. 카라얀, 번스타인, 사이먼 래틀 같은 기라성 같은 선대 지휘자들이 이끌었던 베를린필은 각 단원들의 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유명하다. 김은선은 이에 대해 "내가 원하는 음악을 전달했을 때 수석 단원들끼리 상의하면서 호흡을 맞추더라"며 "지휘자 입장에서 이끌기 편했다"고 말했다.

"베를린필 특유의 사운드와 호흡이 정말 크다고 느꼈어요. 이를테면 달빛이 비치는 풍경을 표현하고자 할 때, 단원들끼리 '보잉을 이렇게 하자'면서 자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죠. 물론 제가 내놓은 방향 안에서요."

지휘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 김은선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악보를 충실히 공부했다"고. "늘 마음 가짐은 똑같습니다. 작곡가가 써놓은 것을 어떻게 현실로 구현할까. 종이에 써져 있는 2차원적인 걸 소리라는 3차원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많이 생각하죠. 이번에는 베를린필이랑 하니까 특히 악보 공부를 더욱 많이 했죠."
지휘자로서 원하는 음악을 단원들이 연주하게끔 하려면 이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필수다. '지휘는 경륜의 영역'이라는 말은 이 때문이다. 김은선은 "나이가 들수록 단원들을 믿고 맡겨야한다는걸 알게됐다"고 이야기했다.

"연습 기간이 짧아서 마냥 제가 원할 때까지 물고 늘어질 순 없어요. 특히, 베를린필 같은 곳은 당장 (제 지시대로) 바뀌지 않아도 본 연주에선 제가 원했던 것의 2~3배 정도 나와요. 그런게 노하우인 것 같아요. 경험이 쌓이면서 지금 당장 안달하지 않아도 되고, 단원들을 믿어도 된다는 걸 알게됐죠. 확실히 연륜이 생기면 더 보이는 게 있는 것 같아요. "

김은선은 이번 공연에서 베를린필과 쇤베르크의 '기대'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3번을 지휘했다. 오페라 지휘를 많이했던 김은선은 성악곡이 포함된 쇤베르크의 기대와 본인이 제일 자신있는 라흐마니노프 3번을 택했다고. 마침 올해는 쇤베르크의 탄생 150주년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전쟁 뒤에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음악 스타일은 굉장히 다르죠.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주의의 끝자락까지 간 사람이고, 쇤베르크는 그걸 파괴하고 나아가려 했던 사람이이에요. 그래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었어요."

이번 무대를 통해 베를린필 음악감독 키릴 페트렌코와의 각별한 인연도 재조명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1년 페트렌코가 프랑스 리옹 오페라 극장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할 때 시작됐다. 당시 김은선이 페트렌코의 어시스턴트(조수)를 하면서 두 사람이 친분을 쌓게됐다고.

"그 이후로 키릴의 연주나 리허설에 자주 찾아갔어요. 키릴은 제 롤모델이자 영감의 원천이에요. 그는 제가 생각하는 한계나 이상을 높여주는 사람이에요. 베를린필 연주 앞두고는 연락 안했습니다.(웃음) 키릴한테 누가 될까봐요. 연주하기 전에는 악단과 케미를 알 수 없으니까요."
베를린필 이끄는 김은선. (c)Bettina Stöß
지휘자의 이미지는 대개 백발의 노장이다. 그래서 김은선에게는 자연히 '젊은 여성 지휘자'라는 정체성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중·장년 남성 일변도인 지휘 분야에 여성이 어떻게 커리어를 개척할 수 있었냐는 것이다. 김은선은 "이런 질문을 많이 받곤 하는데, 사실 음악이 아니라 다른 분야도 리더십 포지션에 여성이 올라가기 시작한 게 오래되지 않았다"며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을 밝혔다.

"미국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도 100년 될까 말까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지휘 분야가 여성이 뒤쳐졌다기 보다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휘를 시작할때만 해도 직업에 성별 구분이 뚜렷했어요. '내가 (지휘를) 해도 되나' 싶었죠. 요즘에는 오케스트라 어시스턴트에 젊은 여성이 정말 많아요. 자연히 제 뒤에 세대는 (여성 지휘자가) 더 많아지고, 분위기도 확 달라질거라고 봐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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