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이겨내고 어쩌라는 식으로 나오는 브람스 교향곡 4번

[arte] 윤한결의 지휘와 작곡 사이

아주 사적인 브람스④
세기의 혹은 역사상 최고의 교향곡, 브람스 교향곡 4번
"음學과 음樂을 모두 잡았다"
한경arte필하모닉 <더클래식2024 시리즈4 : 윤한결 & 브람스 교향곡 전곡> 5월3일 공연 포스터
드디어 브람스 교향곡에 대해 저의 견해를 말씀드릴 마지막 글이네요. 한경arte필하모닉과 이틀간 브람스 교향곡 전곡의 끝을 장식할 브람스 4번 교향곡에 대해 오늘 마지막으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관련 인터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윤한결 "손짓만으로 압도하는 지휘자 되겠다"브람스 마지막 교향곡, 4번 교향곡은 낭만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교향곡입니다. 교향곡의 분위기와 구성상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 비창과도 많이 유사하다고 여겨지죠. 극도로 슬프지만 실낱같은 희망도 공존하는 1악장, 행복한 추억을 회상하는듯한 2악장 그리고 무엇보다 두 교향곡 모두 3악장이 사실상 멋진 해피엔딩 피날레의 역할을 하는데 (그래서 중간 박수가 나오는 대표적인 교향곡),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갑작스레 끔찍한 소리로 4악장에 들어서며 모든 행복이 절망과 고뇌로 바뀌는 반전이 있다는 점이 특히나 가장 큰 유사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두 교향곡의 구성적 유일한 차이점은 4악장이, 즉 교향곡이 어떻게 끝맺음을 맺느냐에 있다고 보는데, 차이코프스키 비창 교향곡은 절망의 끝, 죽음으로 끝이 난다면, 브람스 4번은 마지막 스퍼트를 내며 마치 여느 육두문자와 같은 두 거친 코드로 끝을 맺죠. 불운, 슬픔과 고뇌의 풍파를 그대로 맞고 이겨내지 못한 차이코프스키와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어쩌라는 듯이 삶을 이어 나간 브람스의 차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제4번 E단조 작품번호 98 - 4악장]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B단조 작품번호 74 '비창' - 4악장]


물론, 브람스 교향곡 4번은 한 인간의 인생과 고난과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낭만적인 음악입니다. 그러나 이 교향곡을 당대 수많은 다른 교향악 작품들보다 더 위대하게 만드는 이유는, 이 곡이 극도로 낭만적이고 듣기 좋은 것뿐만 아니라 또한 매우 혁신적이고 현대적이며 동시에 고전, 바로크 시대의 엄격한 규율마저 완벽히 선보인, 역사상 최고의 작곡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무방한 브람스가 평생 갈고 닦은 모든 실력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1악장의 고전적 형식, 작은 테마의 끊임없는 변주와 발전, 현대의 음렬주의만큼 엄격한 브람스만의 3도 하행/상행 기법 그리고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같은 자유로운 흐름. 2악장에 사용된 교회음악선법 및 같은 선율의 무한한 변주. 3악장의 완벽한 오케스트레이션, 마지막으로 길이길이 회자되는 4악장의 파사칼리아(바로크 시대의 변주형식)…. 이렇듯 서양음악 이론의 거의 모든 역사를 다 품은 작품입니다. 사실 이론에 치중하면 감정 표현이 부족하고, 반대로 감정 표현에 집중하면 이론이 흔들리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교향곡을 들으면, 음악이론시험 제출곡마냥 딱딱하지 않고, 오히려 극도로 자연스럽고, 감정적이고 낭만적이죠. 즉, 머리가 해낸 '음학'과 귀와 가슴이 느끼는 '음악',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한 치의 양보나 흔들림 없이 두 가지를 모두 극대화 시킨 음악 역사상 몇 안 되는 혹의 아마도 유일무이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 관해서 비교적 덜 알려진 브람스의 '3도 하행 상행 기법'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데요, (이는 브람스 1번 교향곡 4악장 중간에 현악기에서 나오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4번 교향곡 1악장의 선율, 시-솔 미-도 라-파 레-시 / 미-미 솔-시 레-레 파-라 : 보시다시피 첫 프레이즈의 선율은 3도 하행이고 두 번째 프레이즈의 선율은 3도 상행입니다.

3이라는 숫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곳곳에 3도 코드도 함께 등장합니다. 이 3의 규칙은 1악장 내내 유지되는데, 이런 엄격한 규칙을 유지함에도, 음악적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은 정말 경이롭다고 느껴집니다. 이 기법은 이후 브람스 피아노 소품 op. 119의 Intermezzo에 더욱 적나라하게 사용되죠. 2악장에도 3도의 규칙이 유지되는데요, 1악장과 차이점이라면 3도 사이에 음 하나가 추가되어 보다 선율적인 테마를 형성한다는 점입니다. 시작 부분 호른의 테마 '미-미-파-솔'는 미→솔로 향하는 3도 상행이며 그 다음 '미-미-레-도'은 미→도로 향하는 3도 하행이죠. 이후 클라리넷도 '솔-라-시' 상행, '솔-파-미' 하행하는 둥 이 3도 테마는 또다시 2악장 전체를 구성하며 끊임없이 변주되고 전주 됩니다. (이 테마는 3악장에도 중간중간 등장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실제로 감상할 때엔 이런 엄격한 규칙과 이론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빠져드는, 매우 아름답고 구슬픈 음악입니다.

4악장의 파사칼리아도 극도로 엄격하게 사용되는데,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음악의 흐름이 유지되고, 이러한 엄격한 기법에도 네오바로크스러운 음악이 아닌 분명한 브람스의 후기낭만 음악이라는 점에 경외감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곡의 중간 부분에 나오는 트럼본 코랄은 헨델의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를 인용한듯한데, 이 작품의 정체성을 마지막으로 확인시켜준다고 개인적으로 느낍니다.
워낙 유명하고 청중들에게나 분석가들에게나 인기가 많은 교향곡이라 제가 더 말씀드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기적적이고 경외로운 브람스 교향곡들인 만큼 좋은 연주 약속드리며, 이와 함께 "저의 브람스 교향곡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견해" 글을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휘자 윤한결

[아주 사적인 브람스 시리즈]

▶▶아주 사적인 브람스①베토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1번 4악장▶▶아주 사적인 브람스②초절정 선율은 단 한번, 인생을 닮은 3번 2악장

▶▶아주 사적인 브람스③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 앞으로 한 달… 제2번은 결코 전원음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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