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의 쇼팽을 몇 가지 각도에서 여러 연주들과 비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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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그라모폰 2024년 5월 호의 표지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장식하였네요. 아울러 최근 그의 투어 공연 프로그램이기도 하였던 쇼팽의 연습곡(Études Opp. 10 & 25) 스튜디오 녹음 음반 또한 5월 호 그라모폰의 Editer's Choice 중에서도 최고인 '이 달의 음반'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쇼팽 연습곡(Études) - feat. 임윤찬, 조성진
과거 6-70년대 데카 음반을 연상시키는 복고풍의 이번 앨범의 표지에 대해 임윤찬은 인터뷰에서 "외롭게 투쟁하지만 마음 한편에 사랑하는 이를 품고 사는 예술가,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를 대비시키고자 하였다"라고 합니다.임윤찬 쇼팽 연습곡 (Decca) - < Chopin: Études, Opp. 10 & 25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nooLwL8m3tPorcgVxFjgUmHVLjyN-JQrE
그라모폰의 편집자 Martin Cullingford는 임윤찬에 대해 'the classical answer to K-Pop'이라고 한 데카의 홍보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그러고 보니 표지 사진도 K-Pop 콘셉트로 찍은 것 같습니다), 이번 음반을 젊은 에너지로 가득 넘치는 신선한 연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선 템포의 측면에서 보면, 사실 쇼팽이 악보에 기재한 메트로놈은 현대의 피아노로 따라 해내기 매우 어려운 빠른 속도입니다. 예를 들어 '폭포(waterfall)'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첫 곡만 하더라도 템포는 Allegro이지만 지시된 메트로놈 속도는 <4분음=176>의 초인적인 스피드입니다.이와 관련하여 쇼팽의 Pleyer 피아노는 모던 그랜드 피아노와 달라 빠른 템포에 의한 연주가 수월하였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쁠레옐 피아노 연주]
아주 비주류적인 견해이기도 합니다만, 이 메트로놈 지시가 너무 빨라 어떤 이는 아예 연주 속도를 두 배로 늘이는 것이 쇼팽의 의도라고 하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아래 연주 참조).
[Winters]
그러나, 쇼팽이 템포를 알레그로로 지시했을 때, 그것은 왼손 피아노에 의한 힘차고 격정적인 선율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위와 같은 느린 템포는 메트로놈을 읽는 방법에 관한 논란을 떠나 (아래 다양한 연주에서 볼 수 있는) 왼손 피아노에 의해 주도되는 알레그로가 정확히 표현될 수 없습니다.
[치프라]
[폴리니]
[리히터]
아르헤리치 - < Etude in C major, Op. 10 No. 1 (1965) >
https://youtu.be/jg91_MDzo7s?si=tRFI0ZQkeIlB31T3
아쉬케나지 - < Chopin - Etude Op. 10, No. 1 >
https://youtu.be/EsyGQYnvkMc?si=tgotXuAzygx8QeIE&t=31
다만 문제는 이러한 빠른 속도로 이 연습곡의 첫 곡에 담긴 다양하고도 섬세한 음악적 지시와 화성적 변화 등을 연주를 통해 구현하는 것에는 엄청난 기량과 집중력이 요구된다는 점입니다(사실 이러한 집중력은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합니다).
일례로 오른손 피아노가 화음을 16분음표 단위로 펼칠 때, 쇼팽은 각 음들이 레가토로 이어지면서도 4분음 단위마다 첫 음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라고 지시하고 있는데, (모든 연주들이 다 이러한 세부적 표현에서 성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래 게릭 올손의 연주나 페라이어의 연주를 비교하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게릭 올손]
[페라이어]
이러한 아티큘레이션의 측면 이외에 페달링과 관련하여서도 예를 들어 보면, 아래와 같이 하나의 긴 왼손 베이스음을 화성적 측면을 감안하여 중간에 페달을 떼었다가 다시 밟도록 지시하는 등 쇼팽의 지시는 매우 정교합니다. 이 경우 페달의 갱신으로 인해 왼손 베이스 음의 음량이 파란색 표시 영역과 달리 빨간색 영역에서 확 줄어들게 됩니다(아래 가브릴로프 연주 참조).[가브릴로프]
한편, 이 곡에 관한 최근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보면 좀 더 세부적인 뉘앙스와 시적인 표현을 깊이 파고드는 섬세한 연주들이 적지 않습니다.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래 여러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들 가운데 스미노의 연주는 그가 동경대 공과대학 졸업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네요.
[시쉬킨]
[하야토 스미노]
[Zayas]
특히 쇼팽 콩쿨 우승에 빛나는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를 보면 매우 드라마틱 하면서도 중간의 디미누엔도 등 세부적인 표현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왜 사람들이 그를 '초팽(chopin)'이라고 농담 삼아 부르는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조성진]
이번에 발매된 임윤찬의 연주를 보면 매우 빠른 스피드로 이 곡을 거침없이 연주하고 있는데, 왼손 피아노에 의해 주도되는 영웅적인 당당함에 더하여 자신감 넘치는 핑거링과 함께 개개의 음들이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오른손의 아르페지오도 인상적입니다.
[임윤찬]
그러나 이 두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서로 비교 감상하여 보면 해석의 결이 상당히 달라 비교 감상의 재미를 더하는데, 이러한 표현의 차이점들은 이 곡이 가지는 양면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두 피아니스의 대조적인 연주 스타일은 두 번째 연습곡에서도 제법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이 곡은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이 쉼표의 공간을 활용한 왼손 피아노의 스타카토 표현을 배경으로 한 속도감 있는 반음계 진행이 아주 매력적인 곡입니다.[Annique Göttler]
이 두 번째 곡 역시 첫 번째 곡과 마찬가지로 쇼팽이 지시한 속도는 매우 빨라, 피아니스트에게는 비르투오소적인 기량이 요구됩니다.
[시쉬킨]
그리고 이 두 번째 곡 역시 (울림이 과다한 현대 피아노로는 제대로 표현해 내기 어려운) 섬세한 뉘앙스와 색채감을 담고 있습니다.
[에라르 피아노 (1851)]
그런데, 이번에 발매된 데카 음반에 수록된 연주를 들어보면, 임윤찬은 1번 연습곡와 마찬가지로 역시 상당히 거침없는 속도로 왼손 피아노의 기반으로 전개되는 악상의 큰 그림을 보다 분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는데,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가 왼손 피아노의 스타카토 표현과 관련하여 과감한 페달링과 함께 자주 악보에서 일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임윤찬]
반면에 조성진의 경우는 (흥미롭게도 맨 아래에서 소개 드린 2010년 연주에서는 페달 처리 등이 임윤찬과 비슷한 점이 있었으나) 아래 2015년 연주에서는 악보에 기재된 왼손 피아노의 쉼표의 공간에 의한 스타카토 표현을 상대적으로 더 일관성 있게 정확히 살리면서(다만 0:34 부분은 예외) 매우 섬세하고도 시적인 표현을 들려주는데, 아직 어린 나이의 연주인데도 정말 대단하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합니다.
[조성진]
이상과 같이 이번에 임윤찬의 음반 발매를 계기로 쇼팽의 일부 연습곡을 몇 가지 각도에서 여러 연주들과 비교하며 살펴보았는데, (조성진이나 임윤찬 모두 아직 어린 나이이고 앞으로 점점 음악이 성숙해져 가겠지만) 월클 기량을 가진 이런 우리나라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는 개성 넘치는 음반이나 실황 영상 등을 통해 이 작품이 가지는 다양한 면모들을 다채롭게 비교하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성진도 이 연습곡의 전곡을 연주한 음반을 내놓아 이 두 탁월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연습곡 전체를 통해 비교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임윤찬 (2019) - Op.25]
[조성진 (2010) – Op.10]
페라이어 < Chopin: Etüden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l92B0c9jwwlBWDAAN_jJe85f_xcTLjfBA
폴리니 - < Chopin: Etudes (Maurizio Pollini)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Yy21-q2oyBuzeQimKsjqonnHym59jA0j
Zayas (1983) - < Chopin, F.: Etudes (Zayas) (1983 and 2005 Recordings) >
https://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lCckzQRDEmX2gISMGfztk6qcTU3spnGx0&si=Lz9n629NwcuJRaS0
Gianmaria Bonino - < Chopin: 24 Études Opp. 10 & 25 >
https://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luZttNDnyS9Yc59Mjom-zNHiuOFwhquWA&si=5-zg5ziFpYmBTjow
[Annique Göttler]
[Sara Daneshpour]
[Fialkowska]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