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컬러 마법사'…색약자도 잘 볼 수 있는 세상 만들래요"

이상희 삼화페인트공업 컬러디자인센터장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을 확대하는 게 꿈"

매년 3500단지 외관 재도장 의뢰받아
기업에 제안한 컬러로 신제품 출시되면 '뿌듯'
1200 디지털 컬러북 이어 AI용 빅데이터 구축할 것
이상희 삼화페인트공업 컬러디자인센터장이 제품 디자인으로 제안한 컬러 샘플을 보여주고 있다./안양=민지혜 기자
"저시력자, 색약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색은 못 느껴도 정보는 공평하게 받아야 하잖아요."

삼화페인트공업 컬러디자인센터의 이상희 센터장은 "적녹색맹 같은 색약자나 저시력자들도 누구나 정보를 공평하게 받을 수 있도록 교과서, 신호등, 간판 등을 바꿔나가는 일을 하는 게 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이 센터는 노후 아파트 단지의 외관 재도장, 제품 컬러 제안 등으로 분주하지만 개인적 꿈은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CUD)을 확대하는 것이란 설명이다.CUD란 제품, 검축, 서비스 등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장애나 색각이상을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는 설계를 말한다. 그린과 레드를 구분하지 못하는 적녹색맹을 위해 그린 대신 블루로 신호등 색을 바꾸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센터장은 "1200가지 색으로 디지털 컬러북을 내놓은 것도 컬러 인식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삼화페인트공업이 내놓은 1200 디지털 컬러북은 실제 제품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익스테리어 등에 많이 사용하는 1200가지 색을 모니터로 볼 수 있게 만든 자료다. 색상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배색 가이드, 실제 공간에 적용했을 때를 상상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등의 기능도 무료로 제공한다.

1200 컬러북은 사실 인공지능(AI) 시대 맞춤형 컬러 컨설팅을 위한 포석이다. 이 센터장은 "3차원(3D) 프린터로 건물도 지을 수 있지만 정확하게 구현할 수 없는 게 컬러"라며 "컬러 빅데이터를 구축해 건축, 제품 디자인은 물론 모든 사업 영역에 컬러 컨설팅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희 삼화페인트공업 컬러디자인센터장이 1200 컬러북에서 인테리어 포인트로 쓰기 좋은 세이지그린 색을 보여주고 있다./안양=민지혜 기자
컬러디자인센터에서 실제로 하는 일은 연구원과 비슷하다. 페인트 원료 안에 펄, 메탈 등 안료에 따라 피그먼트를 넣고 자석 같은 도료를 넣어 색의 흐름을 연출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이 컬러리스트 1급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도 색채학으로 석박사를 딴 것도,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 이사를 맡고 대학에서 컬러플래닝 강의를 하는 것도 모두 '조색'에 큰 흥미를 느껴서다. 그는 "하루 종일 조색하다가 해가 지는 날도 허다하다"며 "더 좋은 안료, 내구성 있는 베이스를 만들고 섞으면서 색감과 질감까지 표현해내는 일은 과학자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뿌듯했던 경험을 묻자 이 센터장은 "한 중견 전자기기 업체에 2년 전 제안했던 색상으로 올해 신제품이 출시되는 걸 봤을 때"라고 답했다. 최근엔 한 대형 식품업체의 오래된 브랜드 로고 색상을 바꾸는 작업도 했다. 이 센터장은 "제품 컬러 개발은 연간 1800여건, 아파트 외관 재도장 의뢰는 연간 3500여건에 달한다"며 "매년 트렌드 컬러를 연구하고 기업들에 제안하는 것도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쿼츠블루'다. 집안이 온통 새하얀 인테리어일 경우 포인트 벽 컬러로 추천하는 색은 '세이지그린'이라고 했다. 언뜻 봤을 때 민트로 보이는 색이다. 그는 "따뜻함과 포근함을 줄 수 있고 화이트나 우드 계열의 한국 인테리어에 잘 어울리는 색"이라며 "만약 집이 넓을 경우 네이비, 코럴레드처럼 짙은 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그 위에 그림을 걸면 굉장히 돋보인다"고 했다. 컬러 전문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화장품, 패션, 제품, 익스테리어 등 분야에 따라 컬러 전문가가 공부할 영역이 달라진다"며 "나만의 배색 가이드가 있어야 하고 전문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안양=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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