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업 뛰는 '기업개미'…영업익보다 더 벌었다
입력
수정
지면A20
美증시 호황에 상장사 잭팟본업보다 주식 투자로 돈을 더 많이 번 상장사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미국 증시와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관련 종목에 투자한 기업의 자산 가치가 불어난 것이다. 그러나 부업에 집중한 기업들의 주가는 지지부진해 주주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국보디자인, 평가익 1873억 늘어
조광피혁은 영업익의 10배 수익
서희건설, 반도체 ETF로 재미
정작 실적·주가 부진한 곳 많아
"본질 경쟁력 떨어뜨린다" 지적도
기업개미, 주식 투자로 짭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모피·가죽 제조업체 조광피혁의 지난해 주식 평가이익은 전년 대비 623억원 늘었다. 작년 영업이익(63억원)의 10배에 가깝다. 보유한 지분증권의 장부가액은 3111억원에 달했다. 조광피혁의 최대 투자처는 벅셔해서웨이(비중 61.3%)와 애플(25.6%)이다. 벅셔해서웨이에는 2013년부터 장기 투자했는데, 작년 초부터 현재까지 주가가 31.14% 올랐다. 이 밖에 S&P500지수를 추종하는 ‘뱅가드 S&P500 ETF(VOO)’에도 투자하고 있다.인테리어 업체 국보디자인도 지난해 주식 평가이익이 1873억원 늘었다. 작년 영업이익(324억원)의 6배다. 이 회사는 ‘매그니피센트7(M7)’에 집중해 큰 수익을 올렸다. 엔비디아, 알파벳, 테슬라 등 5개 종목에 고루 투자했다. 지난해 주가가 408.17% 오른 핀테크 업체 어펌홀딩스와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391.44% 상승), 양자컴퓨터 회사 아이온큐(259.13%)도 일찌감치 발굴했다.
중견 건설사 서희건설은 반도체 호황을 예측해 작년 369억원을 벌었다. 지난해 태양광에 투자하는 ‘인베스코 솔라 ETF(TAN)’를 처분하고 ICE반도체지수를 추종하는 SOXX에 투자했다. 지난해 TAN은 26.86% 하락한 반면 SOXX는 65.56% 상승했다. 작년 주가가 140% 이상 뛴 인공지능(AI) 보안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도 발굴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신재생에너지에서 반도체, AI로 시장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적기에 포착해 투자한 전략이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본업 집중해 주가 올려라” 주주 반발도
국내 주식으로 수익을 낸 업체도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SG세계물산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물산 등 12개 국내 상장사에 투자했다. 평가이익은 펀드를 포함해 73억원 늘었다. 작년 이 회사 영업이익(18억원)의 4배다. 대한뉴팜은 삼성전자 우선주와 삼성바이오로직스, ‘TIGER 코스피고배당 ETF’ ‘ARIRANG 고배당주 ETF’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짰다. 경인전자는 서던컴퍼니, 코인베이스 등 해외 주식과 함께 네이버와 카카오에도 투자했다.‘기업개미’들의 주가는 투자 성과와 별개로 실적에 따라 움직였다. 작년 초부터 이날까지 SG세계물산(-23.41%) 경인전자(-11.16%) 대한뉴팜(-7.38%) 등의 주가가 하락했다.
상장사들의 주식 투자 활동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회사 측은 영업 환경 악화에 대비한 분산 투자는 재무안정성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회사의 본질적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과도한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식농부’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가 작년 회사 자본을 활용한 과도한 주식 투자를 이유로 국보디자인 경영진 사퇴를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회사 투자 전략을 짜고 자산을 배분하는 것은 경영자의 판단이지만 투자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 투자는 리스크가 크다”며 “본업과 투자 간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