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당사자의 '예고된 선택'…미래세대에 연금 부담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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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내고 더 받자"…국민연금 공론화委, 설문 결과 발표시민대표단 500명이 최종 선택한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 안은 ‘받는 돈’은 크게 늘리면서 ‘내는 돈’은 소폭 올리자는 것이라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선택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 안대로 개혁이 이뤄지면 기금이 소진되는 2061년 당해 적자는 38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10대 이하인 이들이 자라 그해 내야 할 보험료는 월 소득의 35.6%까지 치솟는다. 연금개혁은 현재 세대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피한데, 애초에 개혁안 도출을 여론에 맡기자는 발상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
현 세대, 고통 분담 나몰라라
'기금 고갈' 2061년 386조 적자
여론에 의존한 개혁안 도출
'더 받는 안'에 당혹스런 정부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아"
○미래세대에 부담 넘긴 시민대표단
국민 여론을 대표해야 할 500명의 시민대표단이 처음부터 사실상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500명의 패널은 지난 2월 연금개혁 관련 일반 여론조사에 참여한 국민 1만 명 중 추려졌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여론조사에서 ‘소득보장안’을 선호한다고 응답한 245명과 ‘재정안정안’을 선호한다고 답변한 172명이 포함됐다. 83명은 ‘모르겠다’고 응답한 이들이다.처음부터 소득보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이들이 재정안정을 중시하는 이들보다 1.4배 많이 들어간 것이다. 공론화위 측은 “1만 명 일반 여론조사에서 소득보장 여론이 더 높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 비율에 맞춰 500명 패널도 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들은 국민연금 학습 전(3월 22∼25일), 숙의토론회 전(4월 13일), 숙의토론회 후(4월 21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설문조사에 답했다. 하지만 학습과 토론을 거치면서도 3차 조사까지 소득보장안이 우세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연금특위 한 민간자문위원은 “소득보장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3주간의 짧은 학습을 통해 연금 재정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오히려 설명을 들을수록 자신이 원래 선호했던 방향에 대해 확증편향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개혁의 두 가지 선택지를 전문가가 아니라 이해당사자가 결정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두 안을 질문지에 넣기로 한 건 노동계, 사용자, 지역가입자, 청년, 수급자 단체 대표 등 36명으로 구성된 의제숙의단이다. 국민연금 납부 및 수급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이 선택지를 만들면서 개혁이라고 볼 수 없는 안이 포함됐다는 지적이 나왔다.숙의와 학습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재정수지 전망 지표를 대거 제외한 학습자료가 시민들에게 제공됐기 때문이다. 향후 70년간 연금의 구체적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연도별 수지차’, 기금 고갈 후 출생 연도에 따라 달라지는 세대별 보험료 차이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참여도 못했다
정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로 악화 일로인 재정 여건과 미래세대 부담을 감안하면 소득대체율 인상은 지속가능성이 없는 ‘개악(改惡)’이란 것이 정부 내부의 판단이다.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공론화위 과정에서 정부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주무부처인 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 재정당국은 합계출산율 0.7명대의 초저출산으로 미래 인구 구조 악화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더 받는’ 안은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떠넘길 뿐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복지부는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가 시작되기 전인 1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더 내고 더 받는’ 1안과 ‘더 내고 그대로 받는’ 2안의 향후 누적 적자 차이가 2700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재정당국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더 받는 안을 지지하는 소득보장파 학자들은 공론화 과정에서 1안 채택 시 늘어나는 미래세대 부담을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하는 국고 투입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23년 45조원, 2050년엔 102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기재부 관계자는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기초연금 등 고령화에 따라 다른 복지 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데 국민연금에까지 국고를 투입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설지연/허세민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