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추상 거장 빌렘 드 쿠닝, 파괴적 혁신은 이태리 여행에서 시작됐다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입력
수정
제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아르떼 추천 전시'미술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자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①빌렘 드 쿠닝과 이탈리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Willem De Kooning L'Italia'
4월 17일 개막 첫날부터 '긴 줄' 최고 화제 전시
'현대 추상 표현의 아버지'이자 아메리칸 드림 상징
네덜란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작품 세계 펼쳐
1959년과 1969년 로마 피렌체 등 머물며 조각 심취
이탈리아 영향이 전성기 회화에 미친 영향 최초 조명
조각 작품과 드로잉 등 자코메티, 로댕과 함께 전시
"로마는 문이 커서 좋다. 크게 환영받는 기분이 든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20대 초반 미국에 정착한 빌렘 드 쿠닝의 이야기(1904~1997)다. 그의 이름에 따라붙는 수석어는 또 있다. 현재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싼 그림 2위 (약 4474억원) 기록을 갖고 있는 20세기 최고가 기록의 화가라는 사실. 추상화로서는 드물게 피카소, 모네, 고갱 등의 그림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다. 그의 그림은 힘차고 강렬하다. 어두운 색감으로 표현한 여인 그림들로 먼저 유명해졌다. 어린 시절 뉴욕 불법 이민자로 건축 현장의 페인트공으로 시작해 뉴욕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친해지며 전업작가가 된 드 쿠닝. 1940년대까지 주로 인물화를 주로 그리던 그는 이후 여러 차례 스스로를 깨고 나왔다.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끌어들이는 한편 전통적인 화풍에서 벗어난 추상적 형태, 작가의 감정이 깃든 붓질로 '추상표현주의', '액션 페인팅' 장르를 열었다. 이후엔 간결한 선과 밝은 색채의 대형 추상들로 잘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 이주자 출신 미국인 작가'로만 알려졌던 그의 전성기 시절을 뒤흔들었던 이탈리아의 영향을 집중 조명하는 최초의 전시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지난 17일 개막했다. 제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맞춰 '빌렘 드 쿠닝과 이탈리아(Willem de Kuning E'Ltalia)'라는 제목으로 문연 이 전시는 첫날부터 전 세계 미술관 관계자와 관람객들이 몰려들며 단숨에 최고 화제의 전시로 떠올랐다. 드 쿠닝은 1959년과 1969년, 10년 간격으로 이탈리아를 두 차례 방문했다. 이 여행은 그의 드로잉과 조각 영역에 강렬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첫 이탈리아 체류는 1959년 9월. 베네치아에서 며칠과 로마에서 몇 시간을 보낸 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4주 후 이탈리아의 풍경을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4개월을 머물렀다. 무엇이 그를 붙잡았던 것일까. 이번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인 게리 가렐스는 "처음 이탈리아에 왔을 때 그의 작업은 3~4년 전보다 크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에게 로마에서의 시간을 분명 강렬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이탈리아 여행 직전 해의 작품으로 시작된다. '볼튼 랜딩'(1957), '디투어'(1958) 등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형태로 뉴욕의 풍경을 연상 시킨다. 그런 그는 이탈리아 스튜디오에서 빛 없는 작은 스튜디오에 머물며 수묵으로 흑백 작업을 다수 그렸다. 종이의 양면을 찢거나 접고 이어 붙이는 등의 새로운 실험들을 시도했다.
1960년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목가적 풍경에 심취했다. '나폴리의 나무, 빌라 보르게세, 강으로 가는 문' 등 이탈리아의 특정 장소를 연상 시키는 작품들이 그렇다. 마리오 코도뇨나토 큐레이터는 "넓은 붓질로 예기치 않은 절단과 간섭, 중첩을 만들어내는데 당시 로마 그림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드 쿠닝의 경력은 종종 일련의 단절과 파열로 요약된다. 그만큼 추상도 구상도, 평범한 조각도 할 수 없는 장르적 경계의 어떤 선상에 서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반복했다는 이야기다. 1960년대 여성 인물들의 그림은 그가 마치 구상으로 돌아간듯 보이지만 풍경에서 썼던 대담한 색채를 반영한다. 그러다 1969년 이탈리아를 다시 방문한 후 그는 조각에서 또 한번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페루자 지방 스폴레토 축제에 초청된 그는 미국에서 알고 지낸 조각가 헤르츨 엠마누엘을 만나 그의 청동 주조소를 다녀갔다. 1970년대 그의 조각들은 웅장하고 기이하고 강렬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조각을 통해 1960년대 그려온 인물에 대한 탐구를 확장한 셈이다. 그때 만든 소형 조각 14점도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이 전시는 드 쿠닝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5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까지 30년을 집중 조명한다. 그가 만든 조각들을 자코메티, 로댕의 조각과 함께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반복해서 신체 부위를 그렸던 작은 드로잉 작품부터 검은 조각들과 다채로운 색의 회화를 한 공간에서 동시 감상하는 것은 잊지 못할 경험이다. 반복되는 선과 대담한 붓질, 그 안에 연금술과 같은 형태들이 만들어내는 드 쿠닝 특유의 기법과 분위기는 최근 회화 전반에 영향을 줬다. 세실리 브라운의 불안한 육체 작품, 캐서린 굿맨의 감성적 추상 회화 등이 그렇다.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했던 위대한 화가에게 이탈리아는 어떤 존재였을까. 첫 이탈리아 여행을 마친 1960년 그는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내 모든 힘이 내 안에 있고, 그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로마를 다녀온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로마의 문이 커서 좋다. 언제나 크게 환영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베네치아=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