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우정 中쩡판즈와 日안도 타다오, 베네치아의 성스러운 조우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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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아르떼 추천 전시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쩡판즈(60). 중국의 현실과 체제를 미묘하게 풍자한 '최후의 만찬' 그림으로 아시아 현대미술 작가 중 가장 높은 경매 가격(약 250억원)을 기록한 남자.
② Zeng Fanzhi: Near and Far/Now and Then
제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공식 개막을 이틀 앞둔 18일 오후 4시. 그가 수백 년 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건물에 나타났다. 거대하고 신비로운 대작들을 들고. 그것도 일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와 함께.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 중 곳곳에서 열리는 수십 개의 전시 중 '꼭 봐야할 톱3'로 꼽히는 전시 중엔 쩡판즈의 'Near and Far/ Now and Then(가깝고 먼/지금과 그때)'가 있다. 16세기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수녀원으로 쓰이던 '스쿠올라 그란데 델라 미제리코디아'가 거대한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들어서자마자 웅장한 기둥과 어두운 조명들 사이로 빛나는 그의 작품들이 마주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직물을 짜낸 '태피스트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을 의심하며 가까이 다가가면 물결치는듯 덧바르고 채색한 그만의 독창적인 기법이 눈을 사로 잡는다. 이번 전시엔 구상적 표현을 반복해 추상을 재정의하려는 쩡판즈의 야심작들이 집약돼 있다. 그의 새로운 기법은 인상파 화가를 떠올리게 한다. 동양과 서양의 익숙한 도상들을 그만의 해석으로 만들어냈다. 모나리자, 인상파의 빛, 해골 도상 등이 그렇다. 기독교와 불교, 도교의 도상 이미지도 넘나든다. 하나의 색이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에만 30가지 이상의 밝은 안료가 쓰였다. 습식 기법을 적극 활용해 전통적인 회화의 아름다움과 공예의 멋까지 동시에 구현했다. 1층에 걸린 두 점의 대작을 지나 2층으로 오르면 하이라이트가 펼쳐진다. 한 점을 완성하는데 3~4년이 걸린 그의 그림들은 두꺼운 질감과 얇고 반투명한 터치가 이어져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수 없이 배회했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볼 때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데, 그의 그림들을 온전히 잘 감상할 수 있게 한 건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전시장의 동선과 분위기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건 마이클 고반 로스앤젤레스현대미술관(LACMA) 관장과 이 미술관의 중국 미술 큐레이터 스테픈 리틀 등이다. VIP 첫 공개에서 만난 마이클 고반은 "쩡판즈의 작품은 기술적인 숙달과 화가의 감정 사이의 균형이 절묘하게 화합을 이루고 있다"며 "안도 다다오 건축적인 감각이 그의 작품에 새로운 연결점을 발생시킨다"고 했다. 베이징 출신의 화가 쩡판즈가 일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82)와 조우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둘은 10년 전 쩡판츠가 안도 다다오에게 박물관을 설계해 달라고 제안하며 만났다. 박물관은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2016년 베이징 현대미술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Parcours'에서의 협업으로 이어졌다. 당시 안도는 공장이었던 공간에 대형 구멍이 뚫린 독립형 벽을 세워 전시의 여러 섹션을 시각적으로 연결했다. 이번 전시도 그의 연장선처럼 해석된다. 캄캄한 수도원 채광창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가 그의 거대한 회화 사이를 오가는데, 환각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반 관장은 "이 전시는 우정이 만들어낸 전시다. 안도와 쩡의 인연, 그리고 중국 미술에 수년 간 관심을 갖고 작가들과 협업해온 LACMA가 역사적인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안도 타다오는 "쩡의 작업은 역동적인 색채를 쓰는 동시에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감성을 융합하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분쟁이 많은 이 시기에 동양과 서양을 잇는 예술적 비전이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영적이고 명상적인 공간을 창조해내고 싶었다"고 했다. 안도는 2층의 시작 지점부터 여러 개의 대형 흰 벽을 설치하고 뒤로 갈수록 점점 중앙의 뚫린 부분이 커지는, 중앙에서 보면 원뿔형태로 보이는 공간을 만들었다. 전시장 양쪽 벽면의 그림은 한 쪽은 바다를, 한 쪽은 태양의 빛을 형상화하고 있다. 카메라 렌즈로 들여다보듯 작품 앞에서 반대편 끝을 바라보면 마치 베네치아의 바다가 일렁이는 듯한 느낌과 찬란한 태양이 쏟아지는 듯한 감상을 할 수 있다. 동양 산수화의 다각적인 공간 구성을 공간에 심었다면 이런 느낌일까. 어떤 그림은 저 멀리 산처럼 보이고, 그 중앙 어딘가는 비어 있어 다른 관람객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다국적으로 진행됐다. LACMA가 전시를 기획하하고 (과거 쩡판즈 전시를 했고, 내년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고흐뮤지엄이 공동 주최했다. 쩡판즈는 "내 그림은 종이와 흑연, 먹과 물감 등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들이 큰 축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이다"며 "마지막 조각은 관람객들이다. 보는 사람이 완성한다"고 했다. 이날 VIP오프닝에 참석한 에밀리 고든커 반고흐미술관장은 "시적이고 거대한 작품들이 안도 타다오의 영리하고 놀라운 건축과 만나 500년 넘은 장소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전시의 감동은 2층 전시장 맨 끝 숨겨진 '비밀의 방'에서 마무리 된다. 수제 종이에 그린 작품은 기독교, 불교, 문인화 도상학을 야심차게 결합한 쩡판츠의 완전히 새로운 작품들이다. 송(960-1279)과 원(1260-1368)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흑백 수묵 산수화의 정점을 구현하는 동시에 청나라 초기 수묵 산수화의 모호함도 결합돼 있다. 지난 20년간 중국 전통 회화의 철학을 서양의 추상과 사실주의에 자유롭게 결합해온 쩡판츠의 또다른 전환기적 작품으로 해석된다. 베네치아=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