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을 짜기 위한 프랑스 욕심에서 광견병 백신이 나왔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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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브릭1865년 프랑스 정부는 발효와 효모에 관해 연구하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게 누에 질병인 미립자병 연구를 의뢰했다. 누에는 고급 섬유인 실크의 원료를 생산하는 곤충으로 중국 수입품을 대체하기 위해 유럽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었다.
버지니아 포스렐 지음
이유림 옮김
민음사
536쪽
2만2000원
프랑스 정부는 누에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하자 그 해법을 파스퇴르에게 의뢰했다. 그는 미생물학부터 수의학, 의학 연구까지 뛰어들었고, 탄저병과 광견병 백신을 발명하는데 이르렀다. 공공보건의 승리를 이끌어 인간의 수명을 극적으로 연장한 길은 실크로부터 시작됐다.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필수 요건이다. 태어나 담요에 싸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직물과 함께한다. 인류의 역사는 직물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버지니아 포스렐은 <패브릭>을 통해 직물의 문명사를 조망한다. 네안네르탈인의 식물 섬유부터 실크로드, 리바이스 청바지, 섬유 배터리까지 직물로 세상을 바꾼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단순한 시대순이 아닌 섬유, 실, 염료, 상인, 소비자 등 다양한 관점에서 직물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직물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도 뿌리 깊게 박혀있다. 계획을 ‘짜고’, 모임을 ‘조직’하고, 실력을 쌓아 ‘성적’을 거둔다. 영어에서는 글을 뜻하는 텍스트(text)는 직물(textile)과 어원이 같다.
섬유를 얻기 위한 노력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을 짤 만큼의 실을 만들려면 야생식물에서 채취한 섬유로는 부족했다.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동물과 식물의 번식을 통제해 두꺼운 털을 가진 양과 솜이 풍부한 목화를 만들어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잘 자라던 목화는 인류의 이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미 중남미 대륙에서는 아프리카 노예 수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미시시피강 하류에서 폭발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목화는 노동력의 부족을 불러왔고, 농장주들은 노예무역으로 이를 해결했다. 백인 개척자들의 이주 속도보다 노예 무역상들이 노예를 들여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고 전한다.
실과 직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고되고 힘든 노동이었다. 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고대부터 시작됐다. 기원전 5세기에 중국에서 수동 회전 물레가 발명됐다. 중세에는 수력의 힘으로 실을 만드는 방적기가 탄생했다. 직물 제조 기술의 진화는 결국 산업혁명 촉발에 일조했다.
직물은 컴퓨터의 초기 역사에 큰 역할을 했다. 직물을 짜는 방식은 패턴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학적이다. 가로 실과 세로 실이 교차하는 직조는 최초의 이진법이었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직물 패턴을 짜기 위해 직조를 이진 배열로 만드는 것은 프로그램용 이진법 코드를 만드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1960년대 아폴로 우주 계획의 프로그래밍에 직조공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직물은 인류 역사에서 화폐로도 큰 기능을 했다. 튼튼하고 휴대하기 쉬우며 나누기 좋았다. 직물을 거래한 상인들은 복식부기와 아라비아 숫자를 채택해 널리 퍼뜨렸다. 근대에 이르러 이 직물 중개인들은 은행가로 변신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직물을 통해 인류가 엮어왔고 아직도 엮어가는 문명의 이야기가 커다란 패턴으로 보인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