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문태국 “정명훈-도쿄 필과 ‘인간 베토벤’의 순수함 들려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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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바이올린)·문태국(첼로) 인터뷰1911년 설립된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NHK 교향악단과 더불어 일본의 ‘양대 명문’으로 꼽히는 악단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 필하모닉의 소리는 범상치 않다. 2016년 도쿄 필하모닉 역사상 최초의 명예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지휘 거장 정명훈(71)은 이 악단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도쿄 필은 언제나 ‘완벽한 앙상블’을 추구합니다. (소리가) 질서정연하게 맞지 않으면 스스로 못 견디는 음악가들의 집합이랄까요. 제가 할 일은 잘 걸어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날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뿐입니다.”
5월 9일 세종문화회관서 도쿄 필 공연
2005년 이후 19년 만에 단독 내한
정명훈,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로 무대 올라
베토벤 ‘삼중 협주곡’ 협연…"완성도 집중"
"솔리스트 개성 지키면서 다채로운 호흡 보여주고파"
오랜 기간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정명훈과 도쿄 필이 한국을 찾는다. 도쿄 필이 단독으로 내한 공연을 여는 건 2005년 이후 19년 만이다. 다음 달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여는 공연에서 정명훈은 지휘자로서 포디엄에도 오르고, 피아니스트로서 건반 앞에도 앉는다. 독일 명문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동양인 최초 제2바이올린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38), 2014년 파블로 카살스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문태국(30)과 함께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을 선보이기 위해서다.24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와 첼리스트 문태국은 “독일의 명문 오케스트라들이 굉장히 정교하면서도 자유로운 소리로 풍성한 음향을 들려준다면, 도쿄 필은 소리가 하나로 통일된 높은 수준의 앙상블과 정갈한 음향으로 귀를 사로잡는 악단”이라고 했다.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오르는 정명훈과 음악적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는 것과 관련해선 “꿈만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정명훈이 ‘정트리오(정명훈·정경화·정명화)’ 활동을 제외하고 피아니스트로 여타 연주자들과 합을 맞추는 일 자체가 흔치 않아서다. 두 연주자 모두 지휘자 정명훈과는 만남을 가진 적이 있으나, 같은 솔리스트로서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이지혜는 2011년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에서 협연자로 나섰고, 문태국은 정명훈이 이끈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 공연(2019·2023)에서 첼로 수석을 맡은 바 있다.
문태국은 “지휘자 정명훈 선생님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지만, 피아노를 치실 때면 그 너머의 굉장히 여리면서 섬세한 음악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정명훈 선생님께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단순히 말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 방향성을 명확하게 전하고, 그에 대한 확신으로 악단을 이끄세요. 그게 정명훈 선생님의 강한 모습이라면, 피아니스트로서의 선생님 소리는 가슴이 아리는 감정이 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 소리는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죠. 선생님과 함께 음악을 만들 수 있단 것 자체가 제겐 더 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문태국)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세 대의 독주 악기가 번갈아 가며 주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솔리스트가 한 명이 아닌 세 명인 만큼, 연주자들에게 독주 실력뿐 아니라 탁월한 앙상블 역량까지 요구하는 협주곡으로 악명이 높다. 이지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색채를 담은 선율을 만들고, 그 모든 선율이 하나의 음악으로 엮어지면서 완성되는 결과물은 분명 다채로울 것”이라며 “솔리스트로서 개성을 지키면서도 파트너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음악이 전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대화를 온전히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은 피아노, 바이올린보다 첼로의 존재감이 큰 곡으로도 유명하다. 첼로가 기교적으로 까다로운 구간을 소화할 뿐 아니라, 모든 악장의 주제 제시를 도맡아서다. 문태국은 “첼로가 선보이는 첫 주제가 이 작품의 첫인상이 될 수 있기에 부담감이 적지 않지만, 솔리스트가 세 명이란 건 역할의 다양성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조화의 힘이 크단 걸 의미한다”며 “혼자만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이들에게 어떤 베토벤을 들려주고 싶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모를 생생하게 전하고 싶어요. 통상적으로 베토벤을 떠올리면 ‘투쟁’ ‘저항’ ‘불굴의 의지’ 같은 강한 단어를 붙이기 쉽지만, 베토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가 얼마나 순수하고 감성적인 인간이었는지 느끼게 돼요. 특히 ‘삼중 협주곡’처럼 장조로 된 작품을 들을 때면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그가 남긴 밝고 행복한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베토벤의 진짜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게 저희의 목표입니다.”(이지혜)이날 도쿄 필 내한 공연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함께 연주될 예정이다.
▶▶▶[인물 DB]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
▶▶▶[프리뷰] 정명훈, 도쿄필 이끌고 내한… 지휘하면서 피아노도 친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