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기업들 '태세 전환'…인수 대신 '협업' 택했다

독점 규제 강화에 합병 대신 협업 택하는
글로벌 대기업들…지난해 40% 증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들어 글로벌 대기업의 합종연횡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규모의 경제'를 노리고 인수·합병(M&A)하던 과거와 달리 조인트벤처(JV) 및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사업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각국의 독점 규제 장벽이 높아지면서 협업을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수 대신 협업 택한 글로벌 대기업

22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들어 글로벌 대기업들이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방식으로 M&A 대신 협업을 선택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각국의 반독점 규제 장벽이 강화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또 고금리로 인해 현금 유동성이 감소하면서 M&A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독일 컨설팅업체 안쿠라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은 침체했지만, 조인트벤처(JV) 및 파트너십 건수는 1년 전보다 40% 증가했다. 특히 IT업계 등 핵심 기술이 빠르게 바뀌는 분야일수록 합작 건수가 많았다.

실제 글로벌 OTT 업체인 디즈니의 경우, 지난 2월 자회사 ESPN 네트워크와 경쟁사인 폭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와 공동으로 스포츠 전용 OTT 서비스를 출시하기로 합의했다. 각 기업당 신규 플랫폼 사의 지분을 3분의 1씩 소유한다. 스포츠 중계권료가 고공 행진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 전선을 펼친 셈이다. 세 기업의 미국 스포츠 중계권 점유율은 55%에 달한다.

디즈니는 같은 달 인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인도 최대 재벌 무케시 암바니가 이끄는 릴라이언스와 85억달러 규모의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7억 5000만명에 달하는 인도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난해 10월 디즈니는 인도 시장에 진출했지만, 구독자 수는 늘지 않았다. 현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지배력이 커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릴라이언스와 손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각 국가가 주력 산업으로 꼽으며 보호 무역주의 정책을 펼치는 전기차(EV) 분야에서도 협력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완성차업체 포드는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 CATL과 손잡고 35억달러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짓고 있다. 세계 4위 완성차업체인 스텔란티스도 지난해 10월 중국 전기차업체 리프 모터의 지분 20%를 인수했다. 지난달에는 닛산이 혼다와 전기차 개발을 위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매서워진 반독점 규제

글로벌 기업들이 M&A 대신 협력을 선택한 이유는 높은 규제 장벽 때문이다. 독점 방지 규제가 갈수록 강화하면서 M&A가 과거보다 까다로워졌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기업이 M&A를 추진할 경우 독점을 방지하려 유럽연합(EU), 영국, 미국, 일본 등의 규제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관료주의 탓에 승인 과정이 지연되거나 특정 국가 규제당국과 법적 분쟁을 벌여야 한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는 2022년 1월 글로벌 게임업체 블리자드 액티비전을 687억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1개월이 지난 지난해 10월 영국 반독점 기관인 경쟁시장국(CMA)로부터 승인받으며 인수를 완료했다. 인수 과정에서 MS는 액티비전의 게임 판권은 경쟁사인 유비소프트, 소니 등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인수를 무산시키려는 규제당국을 설득하기 위한 조치였다.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각국은 현재 AI 산업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 1월 MS, 알파벳 등 빅테크가 벌인 AI 투자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유럽 및 영국 규제당국도 한목소리로 AI 독점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빅테크들은 M&A 대신 합작 형태의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MS는 지난 16일 지분 투자 형식으로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G42와 손을 잡았다. MS는 G42의 지분을 15억달러(약 2조원)에 매입하며 이사회에 합류했다. 지난달 아마존은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에 40억 달러를 투자하며 대형언어모델(LLM)인 클로드 3에 대한 사용권을 획득했다. 알파벳(구글)도 20억달러를 투자하며 구글 클라우드 서비스에 클로드 3을 도입할 예정이다. 세 기업 모두 규제 당국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협업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협업에도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규제당국이 협력 관계에 대한 규제도 강화하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해 아메리칸항공과 제트블루는 미 법무부로부터 독점방지법 위반으로 제소돼 동맹관계를 해지했다. 디즈니의 새로운 스포츠 OTT 서비스도 조사받는 중이다.파트너십의 모호함도 협력의 단점으로 꼽힌다. 대기업이 새로운 파트너십을 체결할 경우 기존 협력사와의 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파트너십 계약은 기밀 유지 조항 때문에 합작사라도 열람할 권한은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파트너십의 가장 큰 경쟁자는 기존에 유지하고 있는 협력사다"라며 "각 기업이 계약 조건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신뢰가 쉽게 깨지고, 법적 분쟁도 잦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