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일수록 큰 문제 풀어야…스타트업 '혁신 엔진' 되겠다" [긱스]

김기준 카카오벤처스 대표 인터뷰
김기준 카카오벤처스 대표가 카카오판교아지트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혁신 엔진 풀스택 벤처캐피털(VC).' 카카오벤처스의 신규 사령탑 김기준 대표가 제시한 카카오벤처스의 비전이다. 김 대표는 최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짧은 안목으로 투자해 단건으로 돈을 찔끔 버는 것보다는 다른 VC들이 하지 않는, 동시에 의미있는 활동들을 하면서 장기적인 수익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2012년 카카오벤처스에 합류해 테크 기업 발굴과 후속 지원을 이끌어온 딥테크 투자 1세대다. 루닛, 한국신용데이터, 리벨리온 등 스타트업 50여곳에 투자했다.

김 대표는 "창업자들이 당장의 적은 돈을 벌기 위해 시야를 좁히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벤처 혹한기로 불리는 지금이 창업자에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과감하게 창업을 택한다면 꼭 풀어야 하는 커다란 문제를 가져오는 게 맞다. 수익모델을 고쳐서 짧게 돈 버는 것보다 길게, 또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지지한다"고 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작년 카카오벤처스의 투자건수와 액수가 전년과 비교해 많지 않았습니다.
A. 초기 투자사는 창업이 얼마나 일어나느냐에 따라 투자 건수도 달라집니다. 작년엔 유망한 창업 시도 자체가 많지 않았어요. 인재들은 혹한기에도 다른 선택지가 많습니다.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창업에 예전처럼 많이 뛰어들지 않는 것 같아요. 올해 시장 분위기도 작년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신 저희가 창업팀을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지표 분석 사이트에서 숫자가 튀면 '이 팀은 만나보자'는 정량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정성적으로도 더 깊이 파내려가면서 좋은 창업팀들을 발굴할 계획입니다.

Q. 올해 벤처투자 시장 분위기는 어떨까요.
A. 확 풀리진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중기·후기 단계 투자는 스타트업과 투자사가 미묘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투자사는 '빨리 (가격이) 떨어져라'라고 하고 있고, 스타트업은 '너네 펀드 써야 하잖아' 하면서 서로 버티고 있는 거죠. 투자사들이 펀드를 쓰긴 써야 돼요.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투자하진 않을 거라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겁니다. 수익성을 증명한 일부 스타트업에 자금이 몰리고, BEP를 못 맞춘 채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 하는 회사 중에선 안타깝게 사업을 멈춰야하는 곳들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Q. 스타트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제도적·문화적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있을까요.
A. 초기 스타트업은 오히려 팁스 같은 지원이 많아요. 중후기 쪽이 오히려 더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투자와 지원 정책이 창업 후 7년까지 몰려있는데, 지금은 업력이 7년 이상 된 회사들도 많아졌거든요. 지원 범위 확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고요. 또 스타트업들이 후속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가 투자사들이 본인이 투자한 마지막 라운드보다 다운라운드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는 겁니다. 현재 시장은 밸류에이션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게 현실이고요. LP들이 GP에 눈치 주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밸류에이션 조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Q. 올해 카카오벤처스가 주목하는 테마나 업종은 무엇입니까.
A. 크게 보면 ICT서비스, 디지털 헬스케어, 게임, 딥테크.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비스 부문은 먼저 깃발 하나 꽂는다고 사업 기회가 생기는 무주공산의 시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웬만한 시도는 이미 다 나온 것 같고요. 특정 영역을 찍어 투자하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현상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업 기회들을 찾아야하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은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고, 이 외국인들이 들어와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풀어주는 회사를 찾는 식입니다. 헬스케어 쪽은 양질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서비스로 만들어내는 끝단, 또 그 데이터가 계속 만들어지고 축적되는 앞단이 있을텐데 각각의 영역에서 의미있는 회사들을 찾아낼 계획입니다. 게임 영역은 적은 비용으로 성공한 팀이 창업하는 케이스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Q. 딥테크 투자는 어떻게 계획하십니까.
A. AI를 중심으로 말씀드려볼게요. 저는 AI가 사람이 태어나 자라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기도 태어나 인지하고 말한 후 걸음마를 시작하잖아요. 지금 AI가 딱 그 정도 단계라고 봅니다. 최근 AI를 붙여서 인간과 교류하면서 움직이는 로봇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아직 막 뛰어다니고 운동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것 같고요. 걸음마 단계의 좋은 AI 회사들을 찾아야할 것 같아요.
김기준 카카오벤처스 대표가 카카오판교아지트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Q. 최근 벤처투자 시장에서 AI 테마가 과열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A. AI는 최소한 3개 정도 레이어를 나눠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먼저 가장 아래쪽에 파운데이션 모델 만드는 영역. 여긴 사실 빅테크 회사들의 게임인 경우가 많죠. 그리고 이 파운데이션 모델을 활용해 끝단에서 서비스를 만드는 어플리케이션 레이어가 있죠. 이렇게 양쪽 끝, 또 이 가운데엔 미들레이어가 있어요. 아마 과열됐다는 평가는 어플리케이션 레이어에 해당할 겁니다. 하지만 좋은 문제를 가져와서 진입 장벽을 유지하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회사들은 그 숫자 자체가 많지 않거든요. 저희는 그런 회사들을 찾을 계획이고요. 파운데이션 모델 부문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할 수 있을까 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특정 언어나 버티컬 영역, 보안 문제에 따른 온프레미스 LLM 등 영역에서 스타트업에 기회는 있다고 봅니다. Q. 카카오벤처스의 투자를 받고 싶은 창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A. 과감해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투자받기가 어렵잖아요. 그러다보니 용감하고 과감한 시도 대신 시야를 좁히고, 문제도 작게 풀려고 하는 추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어차피 이 어려운 시기에 창업하는 거라면 내가 꼭 풀어야 하는 문제에 확신을 가지고 나서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자들이 좋아할 내용으로 아름다운 스토리를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봐요.

Q. 최근 카카오 계열사들이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카카오벤처스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요.
A.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야지요. 저희는 초기투자사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문제를 푸는 회사들을 잘 발굴해 투자하면 결국 카카오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최근 글로벌적으로 CVC 투자가 굉장히 중요해졌습니다. 생성 AI 같은 키워드들이 워낙 돈이 많이 들고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보니 단순 재무적인 관점으로만 투자하기가 어렵거든요. 카카오 본사와 같이 미래 기술과 풀어야할 문제들을 고민하고 방향성을 맞춰 가면서 의미있는 투자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