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잇단 땅 매입 해약에…사전청약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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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사전청약 무용론'부동산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2~3년 전 사전청약을 조건으로 매각한 토지가 무더기 해약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중단 등 금융시장이 얼어붙어 연내 해약 토지는 더 나올 수 있다. LH가 시행한 공공분양의 사전청약 이후 본청약 일정도 차일피일 미뤄져 ‘사전청약 무용론’이 거세지고 있다.
시장 불황에 자금줄 막히며
본청약 전 토지 반납 사례도
LH 인천 가정·화성 동탄 등
올해만 5개 필지 계약 깨져
주택공급도 덩달아 늦어져
실수요자들 불편 커질 듯
인천·동탄 공급 더 늦어져
23일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LH 등에 따르면 올 들어 2월까지 사전청약 조건부 토지 총 5개 필지가 해약됐다. 인천 서구 가정동 ‘인천 가정2’ 1필지와 경기 ‘화성 동탄2’ C-10·13·27·29 등이다. 면적 기준 9만9700㎡, 공급금액으로는 4000억원 규모다. 이 기간 해약된 전체 토지(9개 필지, 7301억원)의 절반을 웃돈다.심우건설이 매입했던 가정2지구는 정상적으로 사전청약까지 했다가 뒤늦게 사업을 포기한 사례다. 이 단지는 2022년 4월 278가구를 대상으로 사전청약을 받았다. 지난해 3월 본청약을 예정했지만,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토지를 반납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전당첨자 중 85%가량이 이탈해 본청약해도 사업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화성 동탄에서는 4개 필지가 무더기 해약됐다. 청약 대기자가 많았던 화성동탄2 C-27필지는 2022년 11월 사전청약을 공식화했지만 ‘희망 고문’으로 끝났다. 2021년 12월 이 필지를 사들인 시행사 유리치는 당초 지하 3층~지상 20층의 아파트 433가구, 오피스텔 40실을 지을 계획이었다. PF 시장 경색으로 자금 사정이 여의찮아 2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보고 토지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보광종합건설이 ‘6개월 내 사전청약’을 조건으로 매입한 화성 동탄2 C-10·13 부지는 소송전으로 비화했다. 이 회사는 2021년 LH로부터 두 필지를 공급 예정가보다 두 배가량 높은 1113억원에 매입했다. 이 회사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책정한 분양가가 지나치게 낮아 사전청약 조건부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것”이라며 LH 측에 계약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공공도 70% 지연…주거계획 ‘비상’
사전청약은 착공과 함께 공급하는 선분양보다 1~2년 앞서 분양하는 제도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보금자리주택을 대상으로 처음 도입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7월 집값이 급등하자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이 제도를 부활시켰다. 현 정부 들어서도 총 4차례에 걸쳐 1만여 가구(LH 공공분양 기준)가 공급됐다.업계에선 사전청약 토지 해약 사태 같은 혼란이 처음부터 예견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시공, 입주 연기 등 선분양의 구조적·고질적 불확실성을 한 단계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LH가 직접 공급해 계약 해지 이슈가 없는 공공분양도 공사비 인상과 청약 일정 지연 같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업계에 따르면 연말까지 본청약이 예정된 45개 공공분양 사전청약 단지(2021년 이후) 중 32개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4년까지 일정이 미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70%가 넘는 규모다. 지연 물량만 1만7913가구에 달한다. 본청약 예정일이 임박해서야 지연 사실을 통보하면서 전세 연장, 대출 등 주거 계획에 문제를 빚는 당첨자의 민원도 빗발치고 있다. LH 관계자는 “본청약이 밀린 사전청약 지구는 기존 주민이 이주를 반대하고 보상을 거부하거나 오염토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향후 본청약 때 비용 인상에 따른 분양가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다. 사업비가 2년 전 사전청약 당시 추정분양가보다 30%가량 오른 곳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사업 지연으로 본청약이 늦어지는 단지의 분양가는 사전청약 당첨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