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생지원금, 포퓰리즘 중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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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 등장 전망 민생지원금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을 지급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을 정식 의제로 내놓을 전망이다. 민생회복지원금은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의 공약이지만, 현재 경제 사정을 감안해 철회할 것을 야당에 간곡히 요청한다. 망국병인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 혹독한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남미 국가들의 사례를 굳이 더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도 민생회복지원금과 같은 무차별적 현금 지원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 효과, 객관적으로 따져야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이번 민생회복지원금은 불과 4년 전 21대 총선을 앞두고 지난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현금 지원한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의 판박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민생 개선 효과는 거의 없었다. 자영업 매출이 반짝 좋아졌을 뿐 소득과 소비를 연쇄적으로 늘리는 소위 승수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투입 예산 대비 매출 증대 효과가 최대 36% 정도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다. 어려운 민생에 허리띠를 바짝 조여 맨 소비자들이 일회성 재난지원금을 받았다고 해서 소비지출을 추가로 크게 늘릴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크게 달라질 상황은 아니다.경제 상황은 4년 전과 완전 딴판이다. 코로나19 위기 때 물가상승률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에 현재는 물가와의 전쟁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4년 전에는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얼어붙어 발생한 위기였는데 이번에는 물가 인상에 의한 실질소득 감소가 원인이다.
돈을 풀면 필연적으로 물가는 오른다.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필사적으로 돈줄을 조이는 이유다. 그런데 어깃장 놓듯 돈을 추가로 풀면 경기를 반짝 띄울지 모르지만 물가 안정이 그만큼 지연돼 민생 회복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마치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환자에게 마약 한 봉지를 주는 꼴이다. 13조원에 이르는 재원 마련도 문제다. 경기 침체로 세수 부족이 이어지고 있으니, 빚을 더 낼 수밖에 없다. 모두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부담이다.
더욱이 한국 사회가 현금 살포 포퓰리즘에 중독될까 걱정이다. 21대 총선에 이어 이번 22대 총선 결과로 또 무차별적 현금 지원이 이뤄지면 선거 때마다 현금 지원 기대감이 커지고 정치권은 득표 전략으로 현금 살포로 답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부지불식간에 포퓰리즘 중독에 빠져들 수 있다.평범한 유권자는 포퓰리즘에 매우 취약하다. 특정 정책의 효과 분석에 필요한 지식과 통찰력을 갖추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정책의 단기적 효과에 대해서는 약간의 단편적 의견을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효과에 관해서는 어두운 미로 속을 더듬거리기 일쑤다. 잘 모르는 것에는 눈감기 마련이다. 초단기적 효과만 있는 마약성 포퓰리즘에 쉽게 빠져드는 배경이다. 소수의 전문가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민주주의 원리가 다수결이라고 해서 무작정 소수가 다중에 묻혀버리면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십상이다.
돈은 이리저리 쪼개 푼돈으로 써 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낭비를 줄여 목돈을 만들어 필요한 곳에 쓰면 두고두고 힘을 발휘한다. 재정을 십시일반 나누어 가지기보다 경제 체질 개선에 사용하면 그 혜택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다. 경제 문제를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로 접근할 때 빠지는 오류가 포퓰리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