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도 30년전 화학업계 위기…"한 지역 1社만 남겼다"

생산량 15% 과감하게 구조조정
폐쇄 설비는 고부가 신사업 전환
한국 화학업계가 처한 불황은 30년 전 일본의 상황과 닮았다. 난립한 기업들이 가격 경쟁을 벌였고 투자가 중복되면서 수익은 곤두박질쳤다. 당시 일본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한 것은 무서운 속도로 규모를 키우던 한국과 대만 기업들이었다. 중국의 부상으로 존폐 위기에 선 오늘날 국내 화학사들의 거울상이다.

일본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위기를 돌파했다. ‘한 지역에 1개사만 남긴다’는 원칙을 세우고 기업 간 통폐합을 추진해 과당경쟁을 멈췄다. 2000년대 들어 구조조정을 진행한 일본 내 나프타분해시설(NCC) 규모만 117만t에 달했다. 전체 생산량의 15%를 단번에 줄였다. 대표적인 곳이 미쓰비시화학이다. 중부지방의 미에현 욧카이치에 있던 연산 27만t 규모 에틸렌 설비를 2001년 폐쇄했다.일본 기업이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었던 데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당시 통산성(현 경제산업성)은 5개년 한시법인 ‘특정산업구조개선 임시조치법’을 1983년 5월부터 시행했다. △효율적인 설비로의 생산 집중 △공동 투자 △공동 판매회사 설립 △과잉설비 처리 등이 담겼다. 법이 일몰된 뒤엔 기업이 자체적인 구조개편에 나섰다.

구조조정에만 그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법을 개정해 회사마다 특정 제품 생산에 주력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1999년 산업활력법, 2014년 산업경쟁력강화법이 대표적이다. 제품별 생산능력이 각 기업에 집중되면서 선도기업이 나오기 시작했다. 폴리프로필렌(PP)에선 2003년 통합 설립된 일본폴리프로가, 폴리에틸렌(PE)에선 그해 합작법인으로 세워진 일본폴리에틸렌이 1위 입지를 굳혔다.

폐쇄한 설비가 있던 자리는 각 지역 특성에 맞게 용도를 전환했다. 그 결과 10여 년이 지난 현재 주요 화학업체가 고부가가치 신사업에서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범용 제품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미쓰비시는 산업용 가스·헬스케어 사업에 나섰는데 그 비중이 작년 96%에 달했다. 신에쓰화학의 반도체 소재 사업 비중은 51%, 아사히의 바이오 헬스케어 비중은 43%에 이르렀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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