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서 무작정 부유하는 봄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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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도시환경에서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 공간 형태로 자리한 지 오래다. 좁은 땅에 켜켜이 쌓아 올려 아래위로 포개어 사는 아파트의 삶이 각박하다 할지라도 교통 편리하고 다양한 편의 시설 두루 갖춘 곳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아파트는 분명 더할 나위 없는 주거 형태가 분명하다.
‘오마치(OH MARCH)’ 양지윤 작가
공터의 이름 모를 들풀도 아름다운 봄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고 보안도 뛰어난 아파트 주거의 여러 유익을 차치하고서라도, 창문 바깥으로 앞마당은커녕 진시황 만리장성 장벽처럼 막아선 삭막한 조망은 늘 아쉽다. 창문에 기대서서 가을 비바람 부는 날 데크 위로 잎이 떨어져 쌓이는 풍경을 보거나, 겨울 하얀 눈이 흩날리며 내릴 때 수북이 쌓일 것을 걱정하면서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고즈넉해지는 경험은 아파트에 사는 한 그저 부러운 남의 일이다.도시의 소음과 분주함에서 벗어나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동경하다가도 매일 아침 바삐 문 나서기 급급하고 도시 삶의 편리와 윤택을 내려놓을 수 없는 나는 자연 친화적인 주택살이를 감행할 엄두가 좀체 나지 않는다.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마당 있는 집 대신, 시간이 날 때마다 근처 공원을 걷거나 단지 내 정원을 살펴 자연을 느낀다. 봄은 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봄에 배속된 6가지 절기 중 4월 식목일 기점으로 들어서는 청명은 봄이 정점을 찍는 시기다. 거짓말처럼 시절이 도래하자마자 하늘은 맑아지고 만물이 생기를 돋운다.
풀들은 오밀조밀 모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맞는다. 그저 ‘풀’이고 ‘꽃’인가 싶지만, 허리를 굽혀 큰 나무 밑으로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면 풀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하나같이 어여쁘다. 오다가다 지나치는 공터, 길, 담벼락의 틈에는 누가 나서서 풀을 심은 적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무수한 생명들이 알아서 씨앗, 포자를 퍼트리고 자기 생장과 분열, 증식을 거듭하고 있다.봄에는 유독 키 작고 여린 풀꽃이 많다. 키 큰 나무들이 높이 자라 그늘을 드리우기 전 넓게 퍼져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고 빨리 성장, 번식하려는 어린 봄 식물의 생존 본능이다. 작은 씨앗에서 부풀어 오른 무수한 씨앗들은 바람의 조력으로 널리 날려 이동한다. 빈 곳을 찾아 떠돌다 의탁하기에 만만한 틈에 안착한다. 날개 혹은 털에 달고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다 내려앉으면 그 어디든 그 자리에 생명을 안착시킨다. 스스로 이동 불가한 작고 가벼운 존재들이 다른 존재에 빌붙어 자신의 존재를 퍼트리고 영속하는 것을 보는 것은 신기하고 기특하다.
보잘것없지만, 결국 그 어떤 동식물보다 넓은 곳을 점유해 나가는 생명력이란. 아스팔트, 보도블록의 틈, 눅눅한 담벼락 좁은 구멍 사이에도 어찌 안착했는지 결국 비집고 자라난다. 좁은 틈을 메우고 녹색을 퍼트린다. 간신히 틈 밖으로 내밀고 벽을 부여잡고 기어오르는 식물들의 생명력과 질긴 목숨을 보면, 생명력이 경이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생(生)이 저리도 서늘하고 눈물겨운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오마치(OH MARCH)’ 양지윤 작가는 한지와 모시, 옥사와 같은 전통 직물로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사계절 다양한 식물의 형태를 본떠 공중에 매달았다. 방향제를 뿌리면 향기도 내뿜고 공중에 움직임도 만들어 내는 ‘디퓨저 모빌’이다. 2020년 <랄랄라>(2020, 인사동 KCDF 윈도우 갤러리, 롯데백화점 갤러리 전시)는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고 공중으로 가벼운 존재들이 휘날리는 아름다운 봄다운 풍광을 실내 공간에 연출한 설치 작품이다.작가는 전통 채색화처럼 한지와 직물에 염료가 스며들고 번지는 과정에서 얻은 은은한 그라데이션 효과와 색채를 디자인의 모티프로 잡았다. 생동하는 봄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전체적인 형태를 발랄한 곡선으로, 파스텔 색감으로, 투명한 질감을 사용했다.작가는 정확하고 일관된 ‘공정’을 수행하며 물성과 질감이 다른 재료들을 재단하고 이어 다양한 생명을 만든다. 대부분 미미한 존재들에 눈길과 관심을 주며 그들의 가벼운 존재감과 움직임을 의미 있는 생명 또는 생의 에너지로 치환해 마치 살아있는 생명을 대하듯 다루고 있다. 각각 <사랑에 빠진 무>, <민들레의 설렘>, <양귀비 왈츠> 등으로 호명하며 특별한 의미를 심어 놓았다.
어떤 것은 날개나 솜털 달린 씨앗 같고 어떤 것은 흩날리는 벚꽃잎 같다. 때로 여린 나뭇잎 아래로 비집고 들어온 빛이 산란하는 것 마냥 바닥과 벽에 무아레(Moire)를 만들기도 한다. 반투명하고 파스텔톤 생명들의 형태, 색과 질감은 구체적인 자연물의 형태가 아니어도 그냥 ‘봄’이다. 그들의 움직임 속에는 평소 우리가 잊고 사는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생명력과 미묘한 여운,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다.각각 공중에 질서 없이 부유하는가 싶지만, 천장에 단단히 매달려 공중에 유연한 곡선을 만든다. 실내인데도 살랑이는 바람결이 느껴진다. 봄이라는 것만으로 누구나 느낄 환대의 감정 그리고 살랑이는 미물의 움직임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떠 ‘랄랄라’ 흥얼거리던 기억이 누구라도 없을까. 보편적인 ‘봄날의 흥취’야말로 작가가 재현하고 싶고 관람자가 공감각으로 느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작가는 환경을 생각해 자연을 해치지 않는 재료와 공정으로 제작한 친환경 한지를 사용한다. 화학 약품 대신 양잿물이나 햇빛으로 자연스러운 색을 낸다. 강도를 위해 한지의 두께를 더하다가 투과성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복 직물을 더해 사용하고 있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질감과 색채감이 물씬해지고 빛 투과성이 좋아졌다. 한지와 직물을 통과한 빛이 쪼개지고 퍼지는 다양한 시각적 효과가 풍부해지면서 재료만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연출의 성취도 한층 좋아졌다.작가가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과 겨울로 계절의 탐색을 넓히면서 다채로운 풍경과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소재뿐 아니라 공기, 날씨와 같은 분위기도 더욱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우리를 침묵, 고요, 정지, 유동과 같은 순간으로 유인해 내는 듯도 하다. 작가는 어느 계절의 풍경이 아닌 우리가 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운과 감성을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봄, 그중에서도 하늘은 맑아지고 만물이 생기를 돋우는 청명(晴明)의 시기, 이제 곧 노란 민들레가 솜처럼 변해 흩날리기 직전에만 볼법한 풍광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자연, 계절의 재현이 아니라 동시에 인간을 포함해 땅에 사는 모든 존재가 꿈꾸는 생명력과 영속의 꿈을 보여주는 일이다.예민한 감각으로 우리가 보고도 보지 못하는 어느 일순간, 대상을 포착하는 작가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과 감성에 기대어 그리고 반투명한 한지와 직물의 물성에 투영된 어느 계절, 생명의 순간을 홀연히 마주할 수 있다. 자기 인생의 과거 어느 봄날을 기억과 감각을 반추하면서.
홍지수 크래프트믹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