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으라는 말에 새벽 4시부터 시장 돌아다닌 공무원들 [서평]

홍제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 쓴 ‘경제 관료의 시대’

1950년대~1980년대까지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 낸
고위 경제 관료 13명 서술
새벽 4시에 일어난 장관은 5시부터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쌀값, 채솟값을 묻는 장관의 질문에 답하려면 실무자들은 새벽 4시에 시장을 한 바퀴 돌아야 했다. 그러고선 아침 7시에 회의했다. 모두 죽을 맛이었겠지만, 그게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보람을 느끼며 일했다.
고도성장기 경제 관료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한 책이 나왔다. 홍제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 쓴 ‘경제 관료의 시대’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강의 기적을 이끈 고위 경제 관료 13명이 주인공이다.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였다. 자원도 돈도 기술도 없었다. 믿을 건 사람뿐이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일제시대 한국과 일본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조선은행, 식산은행 등에서 일한 인재들이 있었다. 그들이 경제 관료가 돼 나라 경제를 책임졌다.

공무원들의 새벽잠을 깨운 사람은 장기영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다. 1960년대 중반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수출 주도 공업화를 이끌었다. 그는 물가를 잡겠다며 정육업자들을 사무실로 불러 호통치고 다방 주인에게까지 연락해 찻값을 내리라고 종용했다.

그런 장기영 밑에서 차관으로 일하며 묘한 긴장 관계를 연출한 인물이 김학렬이다. 장기영은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불도저 스타일이었던 반면, 김학렬은 법과 절차를 꼼꼼히 따지는 성격이었다. 장기영은 성장, 김학렬은 안정을 중시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2년 4개월이나 함께 일하며 경제기획원 전성시대를 열었다. ‘국보 경제관료’도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제 2경제수석으로 일한 오원철이다. 중화학공업 육성의 청사진을 마련한 그를 박 전 대통령은 ‘오 국보’라고 불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제 수석 김재익은 공정거래법 제정을 주도했다. 비민주적인 정치 상황에서 경제민주화의 바탕이 되는 법이 만들어졌으니 시대의 아이러니다.

조국에 이바지하겠다며 반의반 토막 급여를 감수하고 독일에서 돌아온 김재관 전 상공부 차관보, 전무후무한 30대 장관이었던 신현확 전 부총리, 휴전 직후 경제 재건을 이끈 백두진 전 재무부 장관도 기억해 둘 만한 그 시절 경제 관료다.

다시 ‘경제 관료의 시대’가 되기엔 세계 10위권 한국 경제는 너무나도 크고 고도화했다. 관 주도의 성장 모델은 이후 한국 경제에 많은 질곡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혹시 아는가. 앞만 보고 달렸던 그들의 행적을 되짚다 보면 고물가, 고금리, 저성장 시대의 출구가 희미하게라도 보일지.

유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