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잘 살기를, 공생의 도시 울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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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울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산업단지로 눈부신 도시 발전을 이뤘다. 모두가 잘 살기를 바랐던 때로부터 이제는 다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때, 공업도시에서 공생의 도시로 불러도 좋을 울산 남구를 여행한다.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세계는 산업화의 땔감으로 고래를 필요로 했다. 집채만 한 고래의 몸에 작살을 꽂으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과 작살을 빼내려 몸을 비트는 고래. 뜨거운 피가 온 바다를 물들이던 나날이었다.19세기에 절정을 이룬 포경산업은 고래기름을 대신할 석유가 발견되고, 1986년 국제적으로 상업적 포경이 금지되며 막을 내렸다. 장생포 앞바다는 귀신고래, 참고래, 힌돌고래, 밍크고래 등 수많은 고래가 찾아왔던 곳이다. 특히 귀신고래는 장생포의 마스코트로,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으러 이동하는 경로에 속해 1962년 천연기념물 ‘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으로 지정되기도 했다.세계에서 유일하게 토종고래의 학명이 붙은 귀신고래는 몸길이가 수컷 13m, 암컷 14m까지 성장한다. 회색의 몸체에는 수많은 바다생물이 기생하는데 그중 따개비가 붙었다 떨어진 흔적이 여느 고래와 구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귀신고래는 1977년 울산 방어진 앞 5마일의 해역에서 남하회유하고 있는 2마리를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장생포는 1899년 러시아의 포경기지로 지정된 이래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70년대까지 고래잡이로 성업했다. 이후 포경이 금지되며 반짝였던 것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집채만 한 고래를 해체한 작업장도, 고래기름을 짠 착유장도, 고래고기를 팔던 식당도 낡은 사진 속 어제의 일이 되었다. 지난 2008년 장생포 일대는 장생포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어 고래에 울고 웃던 시간과 100년 가까이 번성한 고래산업에 얽힌 문화유산을 조명한다. 장생포고래박물관은 실제 포경선으로 쓰인 진양 5호를 전시실로 복원해 특별한 인상을 준다. 흑범고래, 귀신고래, 힌돌고래, 밍크고래, 참고래 등의 표본과 흑백사진에 담긴 고래잡이 당시의 모습, 새끼를 지키려 포경선에 뛰어든 엄마 고래, 아빠 고래, 고래 가족을 잡는 사람들…. 뼈 한 조각까지 버릴 게 없었다는 자원으로서 고래의 이야기를 마주한다.한편, 고래도시 울산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화강 상류의 대곡천 암벽에는 새끼를 등에 실은 고래와 어로 기구인 배, 작살, 부구, 그물 등 선사인들이 새긴 300여 점의 그림이 남아 있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는 고래박물관, 생태체험관, 울산함, 고래바다여행선, 고래문화마을 등이 자리해 울산 남구 여행 시 1순위가 되는 곳이자 저마다의 여행 취향을 만족시키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다채롭다. 박물관에서 장생포고래문화마을까지는 걸어서도 얼마 안 걸리는 거리지만,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좀 더 높은 곳에서 또 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추천한다.모노레일을 따라 펼쳐지는 창밖에는 장생포 앞바다, 바다에 긴 띠를 두른 울산대교, 장생포 마을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고래문화마을의 점방, 학교, 사진관, 다방 등의 건물 지붕이 차례로 포개어진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풍경이라 신이 나고, 어른들은 가물거리는 유년 시절과 패기 넘쳤던 청춘의 한때가 겹쳐 골목길 여기저기에 시선이 머물러 있다. 마을 입구에는 세 마리의 백마가 ‘날 좀 타봐’ 하며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다. 추억의 리어카 말타기! 15kg 이하만 탈 수 있다니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동네점방 달고나 만들기는 몸무게 제한이 없다. 2000원을 내면 사장님이 세련된 국자에 깨끗한 황설탕을 가득 담아 준다. 시멘트 담벼락이 세워진 작은 마당에 쪼그려 앉아 정성스럽게 국자를 젓는다.은근한 연탄불에 설탕이 갈색으로 녹으면 소다를 적당량 넣어 살살 젓는다. “불에서 국자를 떼어야 해요.” 사장님의 코치까지 새겨들으면 황금색 달고나 완성. 별 틀까지 찍은 달고나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고,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인생의 맛이다.오는 6월 7일~20일에는 마을 일원의 오색수국정원에서 장생포 수국 페스티벌도 열리고, 여름밤을 오싹하게 물들이는 장생포 호러 페스티벌도 인기다. 마을 옆에는 5D 입체영상관에서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리뉴얼한 웨일즈 판타지움도 볼거리다. 4개 주제로 울산의 바다, 반구대암각화 등 신비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울산 남구를 걷는 솔마루길
울산 남구는 공업도시라는 이미지도 강하지만, 그 안에 무궁한 생명력을 뽐내는 푸른 공간이 마른 땅에 물을 주듯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걷기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해파랑길’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우리나라 외곽을 걷는 코리아둘레길 중 하나로 강원도, 포항, 울산, 부산 등 동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을 걷는 코스다. 해파랑길은 총 50개 코스로 울산 남구 도심 깊숙이 스며들어 자연을 고루 느낄 수 있는 솔마루길이 해파랑길 6코스, 7코스와 연결된다. 솔마루길은 총 4개 코스로 비교적 난도가 낮아 짧은 여행길에서도 도전해봄직하다.기자는 1코스를 선택해 걷기 여행을 즐겼다. 들머리인 진입광장이 선암호수공원에서 시작되어 수변길을 따라 봄날의 정취를 누리고, 울산 시민들 틈에 섞여 걸으니 여행이 아닌 사는 맛도 느껴진다. 눈꽃 아니, 봄꽃이 흩날리는 선암호수공원은 시로 치면 서정시다. 조용히 낭독하면 입에서도 향기가 날 것만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산책길에 스피커로 퍼지는 경음악. 자연을 벗 삼아 걷는 길이니 취향이 제각각인 노랫소리는 볼륨을 낮춰도 좋으리.선암제라는 못이 공업용 담수를 위해 확장되며 1964년 선암댐이 됐고, 이를 중심으로 자연생태공원으로 거듭난 것이 선암호수공원이다. ‘선암호수공원 사계’는 울산 남구 1경인 만큼 풍광이 뛰어나니 꼭 들러야 한다. 선암호수공원에서 4km 거리에는 울산 남구를 대표하는 신정시장이 자리한다. 주차장이 시장과 바로 연결되어 자차 이용도 편리하고, 380여 개 점포가 자리해 별천지 같다. 흔히 보던 전통시장이 골목형 시장이라고 한다면, 신정시장은 골목형에 건축물형이 혼합되어 인상적이다.1970년 울산시청이 새로 건립되며 2층 상가건물을 시작으로 상권이 발달해 대형 시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골목과 건물 위에 사이좋게 아케이드가 드리워진 신정시장을 걷노라면 챙기지 않은 장바구니 생각이 간절해진다.온라인 장보기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이 싱싱하고 저렴한 제철 식재료에 묻어난다. 시장에 오기 전 준비할 것은 장바구니와 공복 상태! 수십 년 역사를 자부심으로 삼는 먹거리골목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칼국수 or 국밥. 뭐든 행복을 후루룩.
여정의 즐거움
그때 그 맛, 분위기 _ 가무댕댕대를 잇는 맛집, 울산대 앞에 자리한 경양식 레스토랑 가무댕댕은 현 위치에서만 30년, 현 사장님의 아버지 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업력이 50년이 넘는다고. 평범해 보이지만 다른 맛이 느껴지는 옥수수 수프와 넓고 얇게 핀 돈가스의 궁합은 어른, 아이 입맛 모두 만족시킨다. 나무계단, 우아한 철제난간, 조명까지 1970~80년대 레스토랑과 펍을 지향한 인테리어는 보는 맛까지 더한다.자장면의 품격 _ 만리장성가무댕댕과 함께 울산 남구 백년가게 중 하나다. 백년가게는 중소벤처기업부가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한 점포 중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공식 인증한다. 첫눈에도 품위가 느껴지는 중화요리점에서 선택한 건 삼선자장면(간짜장은 메뉴에 없다)과 새우볶음밥. 둘 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으로 볶음밥에는 맑은국이 제공된다.
달동카페거리에서 한 잔 _ 페즈울산 남구청과 대현중학교 사이 약 400m 거리에 개성 있는 카페들이 문을 열며 오늘날 달동 카페거리를 이뤘다. 카페라테 러버인 기자 눈에 들어온 페즈는 기대만큼 맛있는 커피를 선보이는 곳. 손님 대부분이 20대로 보였는데 BGM도 분위기도 자유로움이 물씬하다. 직원분이 자리까지 음료를 가져다주어 더욱 좋다.
사진 = 이효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