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코 우승' 이승원 "실내악하듯 단원과 하나되는 지휘자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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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정말 좋은 지휘자.' 한 오케스트라 단원은 그와의 연주를 떠올리며 이런 말을 했다. 이달 21일 폐막한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34세 마에스트로 이승원 이야기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승전보를 전하자 마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7일 예정된 교향악축제(4월27일)를 위해서다. '금의환향'의 비행기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대화를 주고받은 이승원은 "(말코 콩쿠르는) 지휘를 시작한 십수년 전부터 꿈꿔온 경연"이라며 "아직도 우승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벅찬 심경을 토로했다.
이승원은 음악가 집안이었던 외가의 영향을 받아 3세부터 피아노와 비올라를 배웠다. 비올리스트인 이모의 영향을 받아 비올라를 전공했지만 그는 넓고 무궁무진한 교향악에 매료됐다. "초등학생 때부터 마음 한 켠에 지휘자를 꿈꿔왔다"는 그는 독일 유학을 떠나 지휘 공부도 함께 했다. 한스 아이슬러 음대, 함부르크 음대 등을 거쳐 비올라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학업을 마친 이승원은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BMI 국제 지휘콩쿠르, 대만 타이베이 지휘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며 지휘자로서 커리어를 밟아 나갔다. 이번 말코 콩쿠르 우승은 그의 커리어에 '퀀텀 점프'가 될 예정이다. 1965년부터 3년 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우승자에게는 무려 24개 악단의 정기연주회 무대에 설 기회를 준다. 무대가 고픈 젊은 지휘자에게 이보다 더 좋은 포상을 없을 것. 미국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스웨덴 로열 스톡홀름 오케스트라 등 각 도시의 명문 악단이 대거 포함돼 있다. 400명 넘는 참가자들이 이번 대회에 몰린 이유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마치 오래된 동료처럼 대해줬기 때문에 무대에서도 (이들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 작곡가, 작품마다 다른 사운드를 선보이며 즐겁게 임하다보니 우승이라는 과분한 결과를 얻게 됐어요." 1라운드에서 이승원은 하이든 교향곡 제49번을 하프시코드 반주가 들어간 버전으로 무대에 올렸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가 탄생하기 전 18세기 유행했던 건반악기로 피아노보다 섬세하고 작은 소리가 특징. 참가자 중 유일하게 이승원만 하프시코드가 들어간 버전으로 무대를 꾸몄다. "바로크 앙상블처럼 올드한 사운드를 찾아가고 싶었어요. 리허설에서는 현악기의 보잉과 비브라토에서 바로크 시대 기법들을 적용하려고 했죠" 심사위원들은 참가자의 순발력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이승원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세미 파이널 무대에서 연주한 라벨 '라 발스'를 꼽았다. 콩쿠르 과제는 바르톡, 라벨, 드뷔시 작품 중 하나를 사전 리허설 전혀 없이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었다. 다채로운 음색과 독특한 음향을 선보여야 하는 라벨의 라 발스를 한 번의 리허설도 없이 완주해야 했다.
"준비하면서도 '멈춤 없이 가능할까' 생각했어요. 오케스트라를 신뢰하고 흐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 라운드 통틀어 가장 다채롭고 만족스러운 연주가 됐어요." 무대 위의 결과물만 평가 항목이 아니었다. 리허설에서 얼마나 단원들을 발전시키는지도 평가 항목에 포함됐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리허설부터 무대 위까지를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착용해야 했다. "악보의 지시어를 충분히 지키고, 이후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 음색 등 원하는 음악을 구체적으로 만들었어요. 특히 시간이 한정적이라 우선 순위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고 봅니다. 명확한 테크닉적 문제가 있는데, 이를 제쳐 두고 추상적인 부분을 말하면 신뢰가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탁월한 비올리스트이기도 하다. 노부스 콰르텟 단원으로 10년 가까이 활동하며 축적한 '타인의 소리를 듣는 훈련'이 그의 지휘에 큰 밑거름이 됐다. "소리를 듣는 건 지휘자의 필수 덕목이지만, 악기 연주자 출신이 아니면 무대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지 않아요. 현악 연주 기법에 대해 심도있게 아는 것 또한 지휘에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그가 현악기 중에서도 비올라라는 중음 악기를 전공했다는 점이 그의 역량에 더욱 기여했다는 평가다. 비올라는 피아노, 바이올린처럼 솔리스트에 특화된 악기가 아닌 함께하는 연주에 강점을 지닌 악기이기 때문이다. "비올라는 고음과 저음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요. 소리를 블렌딩하는 역할을 가진 악기라는 점에서 비올라 주자들은 함께하는 게 익숙한 연주자들이죠" 악기 연주자로 탁월한 기량을 선보인 그는 지휘자로서의 무대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이야기 한다. 악기 연주자는 무대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연습을 이어가지만, 지휘자는 리허설을 마친 뒤로는 단원들을 믿어야 한다고. 또 지휘 동작은 정해진 대로 안무를 하듯 반복 연습을 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이 또한 반복 연습이 필수인 악기 연주와는 다른 점이다.
"단원들이 연주하는 그 순간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야하는 거라서, 정해진 동작 연습을 많이 할수록 오히려 음악에 방해가 될 수 있어요. 어릴 때는 몸이 잘 안 따라줘서 거울보고 동작 연습을 많이했지만, 요즘에는 그보다 귀를 더욱 열려고 합니다. "현존하는 지휘자 중 다니엘레 가티를 존경한다고 했다. "지휘자들 마다 다양한 장점이 있어요. 말로 소통을 잘하는 지휘자도 있지만, 제스쳐를 통해 음악을 전달하는 게 좋은 지휘라고 생각해요. 가티는 손으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어마어마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15년 이상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이승원은 악단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지휘자를 꿈꾼다고 했다. 전통과 개성이 강한 악단과 호흡을 맞추며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게 목표다."단원들과 음악으로 하나가 돼 자연스럽게 인도하고 소통하는 지휘자를 꿈꿔요. 라 스칼라, 라디오 프랑스 심포니,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같은 특색이 강한 명문 악단들과 호흡할 날들을 꿈꿉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이승원은 음악가 집안이었던 외가의 영향을 받아 3세부터 피아노와 비올라를 배웠다. 비올리스트인 이모의 영향을 받아 비올라를 전공했지만 그는 넓고 무궁무진한 교향악에 매료됐다. "초등학생 때부터 마음 한 켠에 지휘자를 꿈꿔왔다"는 그는 독일 유학을 떠나 지휘 공부도 함께 했다. 한스 아이슬러 음대, 함부르크 음대 등을 거쳐 비올라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학업을 마친 이승원은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BMI 국제 지휘콩쿠르, 대만 타이베이 지휘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며 지휘자로서 커리어를 밟아 나갔다. 이번 말코 콩쿠르 우승은 그의 커리어에 '퀀텀 점프'가 될 예정이다. 1965년부터 3년 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우승자에게는 무려 24개 악단의 정기연주회 무대에 설 기회를 준다. 무대가 고픈 젊은 지휘자에게 이보다 더 좋은 포상을 없을 것. 미국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스웨덴 로열 스톡홀름 오케스트라 등 각 도시의 명문 악단이 대거 포함돼 있다. 400명 넘는 참가자들이 이번 대회에 몰린 이유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마치 오래된 동료처럼 대해줬기 때문에 무대에서도 (이들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 작곡가, 작품마다 다른 사운드를 선보이며 즐겁게 임하다보니 우승이라는 과분한 결과를 얻게 됐어요." 1라운드에서 이승원은 하이든 교향곡 제49번을 하프시코드 반주가 들어간 버전으로 무대에 올렸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가 탄생하기 전 18세기 유행했던 건반악기로 피아노보다 섬세하고 작은 소리가 특징. 참가자 중 유일하게 이승원만 하프시코드가 들어간 버전으로 무대를 꾸몄다. "바로크 앙상블처럼 올드한 사운드를 찾아가고 싶었어요. 리허설에서는 현악기의 보잉과 비브라토에서 바로크 시대 기법들을 적용하려고 했죠" 심사위원들은 참가자의 순발력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이승원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세미 파이널 무대에서 연주한 라벨 '라 발스'를 꼽았다. 콩쿠르 과제는 바르톡, 라벨, 드뷔시 작품 중 하나를 사전 리허설 전혀 없이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었다. 다채로운 음색과 독특한 음향을 선보여야 하는 라벨의 라 발스를 한 번의 리허설도 없이 완주해야 했다.
"준비하면서도 '멈춤 없이 가능할까' 생각했어요. 오케스트라를 신뢰하고 흐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 라운드 통틀어 가장 다채롭고 만족스러운 연주가 됐어요." 무대 위의 결과물만 평가 항목이 아니었다. 리허설에서 얼마나 단원들을 발전시키는지도 평가 항목에 포함됐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리허설부터 무대 위까지를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착용해야 했다. "악보의 지시어를 충분히 지키고, 이후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 음색 등 원하는 음악을 구체적으로 만들었어요. 특히 시간이 한정적이라 우선 순위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고 봅니다. 명확한 테크닉적 문제가 있는데, 이를 제쳐 두고 추상적인 부분을 말하면 신뢰가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탁월한 비올리스트이기도 하다. 노부스 콰르텟 단원으로 10년 가까이 활동하며 축적한 '타인의 소리를 듣는 훈련'이 그의 지휘에 큰 밑거름이 됐다. "소리를 듣는 건 지휘자의 필수 덕목이지만, 악기 연주자 출신이 아니면 무대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지 않아요. 현악 연주 기법에 대해 심도있게 아는 것 또한 지휘에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그가 현악기 중에서도 비올라라는 중음 악기를 전공했다는 점이 그의 역량에 더욱 기여했다는 평가다. 비올라는 피아노, 바이올린처럼 솔리스트에 특화된 악기가 아닌 함께하는 연주에 강점을 지닌 악기이기 때문이다. "비올라는 고음과 저음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요. 소리를 블렌딩하는 역할을 가진 악기라는 점에서 비올라 주자들은 함께하는 게 익숙한 연주자들이죠" 악기 연주자로 탁월한 기량을 선보인 그는 지휘자로서의 무대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이야기 한다. 악기 연주자는 무대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연습을 이어가지만, 지휘자는 리허설을 마친 뒤로는 단원들을 믿어야 한다고. 또 지휘 동작은 정해진 대로 안무를 하듯 반복 연습을 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이 또한 반복 연습이 필수인 악기 연주와는 다른 점이다.
"단원들이 연주하는 그 순간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야하는 거라서, 정해진 동작 연습을 많이 할수록 오히려 음악에 방해가 될 수 있어요. 어릴 때는 몸이 잘 안 따라줘서 거울보고 동작 연습을 많이했지만, 요즘에는 그보다 귀를 더욱 열려고 합니다. "현존하는 지휘자 중 다니엘레 가티를 존경한다고 했다. "지휘자들 마다 다양한 장점이 있어요. 말로 소통을 잘하는 지휘자도 있지만, 제스쳐를 통해 음악을 전달하는 게 좋은 지휘라고 생각해요. 가티는 손으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어마어마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15년 이상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이승원은 악단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지휘자를 꿈꾼다고 했다. 전통과 개성이 강한 악단과 호흡을 맞추며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게 목표다."단원들과 음악으로 하나가 돼 자연스럽게 인도하고 소통하는 지휘자를 꿈꿔요. 라 스칼라, 라디오 프랑스 심포니,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같은 특색이 강한 명문 악단들과 호흡할 날들을 꿈꿉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