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정치인들의 필수 덕목 '사과'

사과에도 정석과 기술 있어
국민에겐 흔쾌하게 사과해야

강동균 편집국 부국장
4·10 총선 결과와 관련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우선 사과의 형식부터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여당이 패배한 것에 대해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다.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지난 16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 자리에서 나왔다. 이번 총선 참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윤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이 꼽히는 상황에서 직접 국민 앞에 서서 한 사과가 아니어서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기자회견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국민담화 형식으로라도 이뤄져야 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일방통행처럼 비치는 국무회의를 선택해 마지못해 사과하고, 심지어 책임을 장관들에게 돌린다는 인상까지 줬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윤 대통령은 최근 새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직접 소개하며 기자들과 즉석 질의응답도 해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사과의 내용도 미흡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년의 국정 운영에 대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이 체감할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고 했다. 성난 민심 앞에 자성의 메시지는 부족했고, 국민과의 소통을 늘리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내놓지 않았다.

입장 표명에 가까운 윤 대통령의 사과가 여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을 불러오자 대통령실은 국무회의가 끝나고 4시간 뒤 추가 메시지를 공개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과 참모진 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대통령인 저부터 잘못했다. 대통령부터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비공개 발언이 아니라 직접적인 육성으로 이렇게 사과했어야 한다.

사과 타이밍에서도 한발 늦었다. 총선 전부터 민심은 대통령과 여당에 등을 돌렸고 그 결과가 여당의 총선 참패로 나타났지만, 국민들은 총선이 끝나고 6일이나 지난 후에야 TV를 통해 윤 대통령의 사과를 들을 수 있었다.사과에도 정석이 있고 기술이 필요하다.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에드윈 바티스텔라는 <공개 사과의 기술>에서 사과의 정석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무엇이 미안한지 내용이 구체적일 것, 늦지 않게 제때 할 것, 진정성이 있을 것, 앞으로의 다짐과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과에 대하여>의 저자 아론 라자르는 사과의 진정성을 입증할 ‘충분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를 준 것에 책임을 지며, 변화된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하고,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그런 순간을 더 자주 접한다. 하지만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사과에 매우 인색했다. 여론이 들끓고 나서야 떠밀리듯이 사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과하면 권위와 리더십이 훼손되고,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야당 지도자 역시 사과에 인색하긴 마찬가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측근들의 비리 연루 의혹에,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자신과 가족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각종 SNS 등을 통해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유통되면서 정치인들의 잘못도 즉각 드러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정적(政敵)들의 공격을 우려해 제대로 사과하는 정치인은 보기 어렵다. 정적에 대한 사과는 몰라도 정치인이라면 국민을 향한 사과는 흔쾌하게 해야 한다. 사과를 잘하는 게 이제 정치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