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아침햇살에 빛나던 물방울, 마흔의 김창열은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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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50년간 물방울만 그렸냐고?50년.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인 김창열 화백(1929~2021)이 ‘물방울 그림’을 그리는 데 쏟은 시간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50년씩이나 질리지도 않고 한 가지 주제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냐고. 그에게 물방울은 어떤 의미였냐고.
특별한 의미 없어, 그냥"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김창열 작고 3주기 회고전
‘영롱함을 넘어서’
1970년대 초반~2019년 작품 38점 전시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 화백의 작고 3주기 회고전 ‘영롱함을 넘어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전시다. 김 화백의 1970년대 초반 작품부터 2019년 작품까지를 망라하는 그림 38점이 나왔다.
“물방울은 그냥 물방울”
김 화백이 물방울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미술 운동의 선두에 서며 두각을 드러냈던 김 화백은 세계 미술계에 직접 도전하기 위해 1965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동양에서 온 무명 화가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훗날 김 화백은 무관심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 때를 “악몽 같았다”고 회고했다. 1969년 프랑스 파리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새 캔버스를 살 돈도 없었다. 그래서 김 화백은 그림을 그린 캔버스를 재활용해 또다른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물감이 떨어지기 쉽도록 캔버스 뒷면에 물을 뿌려뒀다. 그러던 1971년의 어느날 아침, 김 화백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캔버스 표면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의 아름다움에 새삼 눈을 떴다. “그때 물방울을 만나고 존재의 충일감에 몸을 떨었다”고 생전의 김 화백은 회고했다.이후 그는 캔버스에 물방울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물방울 연작은 1972년 첫 전시 직후부터 프랑스와 한국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층 전시장에 나와 있는 1970년대 작품들에 그의 초기 화풍이 드러나 있다.인기를 얻게 된 그에게 “왜 물방울을 그리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평론가들은 비극을 보고 흘린 눈물, 세상을 정화하는 물, 환상과 현실의 경계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하지만 정작 그의 답변은 이랬다. “특별한 의미 없어. 물방울이 그냥 물방울이지.”
같은 물방울이 없다
김 화백은 자신의 그림을 굳이 현학적인 말로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오직 ‘더 아름다운 물방울 그림’을 그리는 데만 열중했다. 김시몽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명예관장은 “마치 아이가 구슬 놀이를 하듯이, 김 화백은 순수한 마음으로 물방울의 시각적 효과를 연구하고 즐겼다”고 말했다.수없이 많은 물방울을 그렸지만 그 중 똑같은 물방울은 하나도 없었다. 2층과 지하 전시장에 걸린 1980년대 이후 작품들에서는 글자 위에 맺힌 물방울, 스며들며 글자를 번지게 한 물방울, 큰 물방울, 빨리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 그러다 합쳐진 물방울, 제멋대로 찌그러진 물방울 등 다양한 변주를 통해 김 화백의 끊임없는 실험을 엿볼 수 있다.김 화백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녹이기 위해 물방울을 그린다.” 그 말대로 평생 수행하듯 무아지경으로 그린 캔버스 속 물방울에는 김 화백의 50년에 걸친 예술혼이 녹아들어 있다. 심오한 설명도, 화려한 색채나 모양도 없는 그냥 물방울 그림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건, 김 화백의 이런 순수한 열정과 집념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평가다.김 화백의 작품을 시대별로 고루 감상하며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다. 방탄소년단(BTS) RM이 소장한 작품도 한 점 나와 있다. 전시는 6월 9일까지.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