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울미술관에 ‘파’ 심었던 작가 … 그가 미완성작을 들고 나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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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백아트 박경률 개인전 ‘네시’지난해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바닥에는 미술관과 조금 동떨어진 물건들이 깔렸다. 거울과 밧줄, 그리고 시장에서 볼 법한 비닐봉지, 대파 등이 넓은 전시장 바닥을 가득 메웠다. 관람객은 이 물건들 사이를 피해 지나가야 하는데, 혹여 거울을 깨뜨리거나 밧줄에 걸려 넘어질 수 있기에 조심해야만 했다. 이 파격적인 설치작은 당시 북서울미술관 단체전에 나온 작품들 중 가장 주목받았다.
이 작품의 주인은 박경률. 그가 이번에는 삼청동을 찾아왔다. 백아트에서 열리는 개인전 ‘네시’를 통해서 관객을 만난다. 작가가 2022년 미국 산타모니카 레지던시에서 그린 작품들과 귀국 이후의 작업들이 걸렸다. ‘예술의 형태는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다는 점에서 북서울미술관의 연장 전시격이지만 그 형태는 훨씬 간결하다. 관객의 발에 차이던 모든 물체들을 들어낸 후 거울과 회화 작품만 남겼다.갤러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바닥에 설치된 거울 위에 가지런히 놓인 분홍색 음료수 병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작품의 제목은 ‘웰컴 드링크’다. 제목처럼 박경률은 자신의 개인전을 찾는 관객들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문 앞에 이 작품을 설치했다. 관객은 들어서며 실제로 이 음료수를 집어들어 마셔볼 수 있다. 산타모니카에서 자주 마셨던 음료수를 전시하며 관객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바로 옆 움푹 들어간 벽 공간에는 작품 하나가 걸렸다. 이 그림 옆에는 동그란 거울 두 개가 나란히 놓였다. 관객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거울 속 회화의 각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박경률에게 이 두 개의 거울은 인간의 눈을 상징한다.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작품을 보는 눈이 바뀐다'는 의미를 담았다. 회화에는 형광 안료를 사용했다. 빛이 들어오면 움푹 패인 공간 전체가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겻을 경험할 수 있다.마대자루 천에 그림을 그린 작업물 세 점도 전시됐다. 그는 코로나19 당시 인스타그램으로 전시를 관람하고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에 충격을 받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 화면 너머로 이미지만 전시하는 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이란 물질과 같다고 여긴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 미술의 진정한 존재 의미다’라는 이야기를 마대자루라는 물질 위에 그림을 그리며 전달한다. 전시장 다른 한 켠에는 그가 산타모니카에서 생활하며 그린 회화 작품들을 모아 선보인다. 레지던시에서 인공조명을 모두 끄고 오로지 자연 조도에만 맡겨 그린 그림들이다. 인공 조명을 쓰지 않으니 햇빛이 비추는 맑은 낮 시간에만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작업 특성상 그는 레지던시 기간 동안 회화를 완성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햐지만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미완작’ 상태 그대로다. 서울에 돌아오니 작품을 완성할 의미를 느끼지 못해서다. 그림 대신 그리기라는 행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작가 스스로 깨달으면서다. 그는 이번 전시에 미완작을 내놓으며 자신의 경험을 관객에 전한다. 한 층 위로 올라가면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네시’ 회화가 관객을 맞는다. 제목 네시는 시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스코틀랜드 전설에 등장하는 호수 괴물 네시를 뜻하기도 한다. 박경률은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괴물이 예술이랑 비슷하다는 점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실 예술도 유령처럼 세상에 명확하게 내보일 수 없다는 스토리를 담아냈다.
박경률의 작품엔 주연과 조연이 나뉘지 않는다. 배경과 인물, 회화, 그리고 설치작에 쓰인 파와 오렌지까지도 모두 작업의 주인공들이다. 그의 전시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재현의 불가능성에 있다. 그는 계획 없이 바로 그림을 그리고 설치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이 달라지면 같은 작품이라도 똑같이 재현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전시는 5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