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위반자도 유공자? 보훈부 "대통령 거부권 요청 검토"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이 지난해 12월2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고 김동석·박정모 대령 특별전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은 야당이 단독으로 본회의에 부의한 민주유공자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유공자 지정 대상자를 결정하는 규정이 명확하지 않고 심사 기준도 모호해 사회적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보훈부는 필요하다면 대통령실에 거부권 행사까지 요청할 계획이다.

이 차관은 이날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법안 적용 대상에는 독재정권 반대운동, 교육·언론·노동 운동, 부산 동의대·서울대 프락치·남민전 등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서 인정한 다양한 사건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중 어떤 사건이 '민주유공사건'인지, 그 관련자 중 어떤 사람을 '민주유공자'로 결정할지에 대한 심사기준이 법률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민주유공자를 결정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기준이 없다"

민주유공자법의 최대 쟁점은 법안 적용 '대상자' 선정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본회의에 올린 법안에 따르면 이 법의 적용 대상자는 '1964년 3월 24일 이후 반민주적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해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기여한 희생 또는 공헌이 명백히 인정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람'이다.

보훈부 측은 국가유공자별 정의가 명확한 국가유공자법과 달리 민주유공자법의 경우 모호하고 불명확한 용어로 민주유공자를 규정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가유공자법은 적용 대상자를 순국선열, 애국지사, 전몰군경 등 18개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반면 민주유공자법에 따라 적용 대상자를 정할 경우 심사 과정에서 혼란이 초래될 것이란 설명이다. 보훈부 당국자는 "결국 누구는 탈락하고 누구는 적용을 받는 경우가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탈락한 분들의 수많은 민원이 제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강민국 국민의힘 간사가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가맹사업거래공정화법 개정안과 민주유공자예우법 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도록 요구하는 안건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강은구기자 2024.4.23

국보법 위반자도 민주유공자 되나

야당 측 주장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위반자는 민주유공자법 적용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실제로 법안에도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은 예우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보훈부는 이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차관은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경우 법안에 따라 민주유공자 등록이 당연히 배제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경우 보훈심사위원회 심의·의결을 통해 민주유공자로 등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민주유공자법 제25조 4항에 따르면 제1항1호(국가보안법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에 해당하는 사유로 유공자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때에는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보훈부 당국자는 "바꿔 말하면, 국보법을 위반한 사람도 심의·의결에 따라 얼마든지 민주유공자로 지정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당연 배제가 안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유공자 혜택은 과한가

민주유공자법에는 당초 교육, 취업, 주거 같은 지원 혜택이 포함돼 여당 측으로부터 "운동권 셀프 특혜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비판이 일자 고령 유공자와 유가족을 위한 의료·양로 지원 정도만 남겨두고 나머지 혜택은 대부분 삭제됐다.

이 차관은 이를 두고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민주유공자 본인과 자녀의 경우 고등교육법 시행에 따라 대학 입시에서 유공자 특별 전형 대상에 포함된다"며 "취업과 교육 같은 실질적 지원 사항이 모두 배제됐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훈부는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보훈부 당국자는 "입법 과정에서 야당 측에 엄격한 기준의 필요성 등 의견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필요하다면 대통령실에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고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