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서울 통근러 '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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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 금지'에 버스 '오픈런'까지지난 25일 오전 6시 25분께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역’ 버스 정류소 앞. 텅 빈 도로엔 이른 시간부터 차량 십여대가 연달아 줄을 지었다. 기점과 가까운 정류장에서부터 버스가 만석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좌석을 선점하기 위해 정류소에 가족을 태워다 주는 사람들이 많아져 생긴 현상이다.
직장인 박재원(36)씨는 “매일 아침 정류장 두 개를 역행해서 버스 ‘오픈런’을 하는 상황”이라며 “이른 새벽마다 정류소에 데려다주는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이 때 버스를 놓치면 제 시간에 회사에 도착할 수가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수도권 외곽에선 최근 ‘기점 만차’로 인한 탑승난이 벌어지고 있다. 기점 만차는 기점과 그 근처 정류소에서 승객이 다 차 이후 정류장에선 버스를 탈 수 없어 발생하는 문제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가 입석 금지 제도를 법적으로 강제하자 이 같은 문제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강남 출근에만 2시간 30분…"아침마다 버스 타기 위해 전쟁"
이날 오전 6시 35분께 센트럴파크역 정류장엔 광역급행버스인 M6405를 타기 위해 20명이, 그다음 정류장엔 40명가량의 승객이 줄을 섰다. 기점에서 3개의 정류장을 지나자 40석 규모의 버스는 만석이 됐다. 버스 기사는 그다음 정류장부턴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창밖으로 ‘X자’를 만들어 보인 채 무정차 통과했다.매일 아침 기사와 승객 간 실랑이는 일상이 됐다. 이날 오전에도 버스 기사는 "남은 좌석이 없으니 뒤차를 타달라"고 시민을 설득했지만, 시민은 “서서 가겠다"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기사는 시민에게 "입석이 어렵다. 뒤차를 타달라"고 말한 뒤 출발했다. 시민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직장인 윤모 씨(33)는 “아침마다 버스를 운 좋게 타지 못하면 결국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고 간다”며 “강남 소재 직장까지 택시비가 5만원가량이 나오는데 답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광역급행버스 M6405의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출근 시간(06~09시) 이용 인원은 기점에서 380명, 그 다음 정류장에서 705명으로 집계됐다. 서울 진입 전 마지막 두 정류소에선 각각 233명과 137명이 이용했다. 기점에서 멀어질수록 이용 인원이 줄어드는 기형적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퇴근 시간에도 나타나고 있다. 전날(25일) 오후 6시께 인천행 대부분 광역버스는 ‘서초-교대-강남역’을 지나면서 이미 만석이 됐다. 양재역~선바위역 정류장에선 자리 잡기조차 힘들어 한 두 명을 태운 뒤 출발했다. 인천-서울로 오가는 M6450, M6724번, 경기-서울을 잇는 M5107번 버스(수원~서울역)와 M7731번(경기 고양~공덕역) 등 수도권 외곽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오가는 시민들은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입석 금지 강제…버스 회사는 "어쩔 수 없다"
입석 금지는 2014년 7월부터 국토부 훈령에 따라 수도권 광역 버스 등을 포함한 버스들에서 입석 승객을 태우지 못하게 한 정책이다. 시민 불편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 행정’ 비판에 시행 한 달 새 폐지됐지만, 2022년 경기도 공공버스 제도 시행과 이태원 압사 사고를 계기로 부활했다. 지난해 도로교통법 시행령이 개정돼 현재 입석 금지는 법적으로 강제되고 있다.입석이 법적으로 금지되자 출퇴근 시간엔 입석 승객을 받던 버스들도 더 이상 입석 승객을 받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간 정류장에서 버스가 출발하는 정책이나 미리 좌석을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는 일부 노선에만 적용될 뿐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다. 버스 업계도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인천의 한 광역버스 운송회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광역버스는 시외버스에 비해 저렴한 가격 책정하고 있음에도 노선이 상대적으로 길어 수익률이 심각하게 낮다"고 했다.
이어 “입석 금지 정책으로 인해 버스당 운송할 수 있는 승객 수가 제한돼 적자가 커지고 있다”면서도 "무리하게 입석 승객을 태웠다가 사고라도 나면 모든 책임을 운수사가 져야 하는 상황이라 버스 회사도 어쩔 수 없이 입석을 금지하고 있다”이라고 설명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