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신약개발은 선택 아닌 필수…SK바이오팜, 연내 新플랫폼 선보인다

기본적으로 신약은 너무 비쌉니다. 지구 전체가 원할 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부터 혜택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은 개발비용이나 허가비용 등 전반적인 비용을 낮춰줍니다. 신약 가격을 낮춰주니까 더 많은 지구인들이 혜택을 받는 데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죠.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지난 25일 서울 역삼에서 최종현학술원(이사장 최태원)이 개최한 ‘AI로 다시 쓰는 바이오 혁신’ 세미나 강의모습. 최종현학술원 제공
AI 신약개발은 제약·바이오업계 ‘핫테마’다. 구글에 이어 엔비디아도 AI 신약개발 플랫폼 개발전쟁에 뛰어들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바이오테크 기업간 새로운 협력 생태계도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역삼에서 최종현학술원(이사장 최태원)이 개최한 ‘AI로 다시 쓰는 바이오 혁신’ 세미나에서는 신약 연구 개발 생산 전 과정에서 AI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한국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SK바이오팜, 연내 '허블플러스' 출시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이 최종현학술원 세미나에서 AI 신약개발 중장기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사진)은 기자와 만나 AI 신약개발 중장기 로드맵을 짜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 밝혔다. 2020년 처음 선보였던 AI 프로그램 ‘허블(HUBLE)’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허블 플러스(HUBLE +)’도 연내 선보일 예정이다.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뒤 제 2의 먹거리를 찾고 있다. 현재 집중력 장애, 고형암, 조현병 등을 적응증으로 하는 새로운 파이프라인(후보물질)들을 다수 개발 중인데, 여기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동훈 사장은 “약을 개발하고 파는 무기가 바뀌어가고 있다. AI는 약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대표적인 ‘신(新)무기’”라고 말했다. 이어 “SK바이오팜 AI, 디지털 전략을 종합적으로 짜는 작업을 시작하자고 오늘(25일) 회의에서 말했다”며 “외부 전문가들도 적극 영입하는 오픈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은 방사성의약품(RPT), 표적 단백질 분해 치료제(TPD), 세포유전자치료제(CGT)를 개발하는 데도 AI를 활용할 계획이다. 기존 허블이 저분자 화합물을 개발할 때만 쓰였다면 허블플러스는 3대 성장동력 연구개발(R&D)을 고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예정이다.이 사장은 신약 개발뿐 아니라 생산의 측면에서도 AI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초를 키울 때 온도와 조도 습도 모든 것을 제대로 맞춰줘야 난이 제대로 꽃을 피우지 않냐”며 “약도 마찬가지다. 약이 제 역할을 하려면 생산과정에서 여러가지 환경과 조건을 잘 맞춰주고 시나리오 분석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AI가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산을 의뢰한 고객사들에게도 AI를 활용하면 관련 정보를 시시각각 즉각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게 된다”며 “의사결정자 입장에서는 빠르게 효율적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AI로 신약개발 비용 연 100조 아낄 수 있어"

김선 서울대 컴퓨터공학부교수는 화학, 약학, 생물학, 컴퓨터공학 등 통합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AI를 활용하면 바이오마커를 효과적으로 발굴할 수 있을뿐 아니라 환자 수준의 약물반응을 예측해 임상설계에도 도움을 준다”며 “다만 여러 학문이 결합된 초다학제 융합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지식과 실험데이터를 통합하는 예측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융합연구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 그리고 융합적 기술력을 갖춘 인재 양성이 우리가 당면한 도전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정석 이노크라스 CIO(최고혁신책임자)는 글로벌 제약사 리제네론의 선례를 소개했다. 그는 “리제네론은 자체 유전학센터를 자회사(RGC)로 만들어 신약개발을 이어가고 있다”며 “현재 유전질환 신약 3개가 임상시험 단계이며, 이외 20개의 파이프라인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명확한 목표를 갖고 AI 및 유전체 정보를 활용해야 진정한 효율을 끌어낼 수 있다”며 “세계 유전체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한국의 의료·산업계 소프트파워 활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김재원 밴트AI(VantAI) COO(최고운영책임자)는 AI를 활용하면 매년 아낄 수 있는 비용이 600억~1000억달러(약 82조~137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밴트AI는 미국의 생성형 AI기반 신약개발 기업으로 SK㈜가 투자한 회사기도 하다. 그는 “AI를 활용하면 특정 임상에 맞는 환자를 어떻게 등록할지, 약을 얼마나 투여할지, 또 임상시험센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지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일반 CRO(임상시험수탁) 기업에 가면 3~5개월 뒤에 시작할 임상이, AI를 활용하면 영업일 기준 10일 이내 시작하는 것도 가능”이라고 설명했다.

정태흠 아델파이벤처스 대표 파트너는 “바이오 기업 혁신의 3단계는 연구 및 기술수출(LO)에 집중하는 1단계, 자체적인 임상개발 역량을 확보하는 2단계, 인수합병(M&A)을 통해 확장하는 3단계가 있다”며 “한국 바이오 기업들은 대부분 1단계에 머물러 있으나 2,3단계로의 진화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