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보물창고' 다시 열렸다… 공사 중에 미공개 작품 대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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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재개관 기념전 '보화각 1938'1년 7개월 동안 보존·복원 공사를 마친 간송미술관이 새 모습을 드러낸다. 5월 1일부터 6월까지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열리는 '보화각 1938' 전시를 통해서다. 전시에는 최초 공개 36점을 비롯해 모두 43점의 유물이 선보인다.
1세대 건축가 박길룡 '설계도면' 첫 공개
간송 초기 컬렉션, 미공개 서화유물 전시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란 뜻의 보화각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국보급 유물이 모인 보물창고다. 1938년 설립된 간송미술관의 초대 건물이자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곳이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로도 지정됐다.중·장년층의 어린시절 나들이 추억이 서린 보화각 건물도 세월의 풍상을 비껴가지 못했다. 장장 85년의 시간이 흐른 터였다. 결국 설비 노후화와 외벽 탈락을 보수하기 위해 지난 2022년 8월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현대적 전시 설비와 편의시설을 갖추고, 간송의 서재와 온실 등의 옛 모습을 되찾는데 국비 총 23억원이 들었다.
이번 공사로 인한 예상치 못한 성과도 있었다. 그동안 세상 빛을 보지 못한 미공개 컬렉션들이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좁은 수장고에 있던 자료들을 넓은 공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유물들을 대거 확인했다"고 말했다.한국 1세대 근대 건축가 박길룡(1898~1943)이 작성한 보화각의 설계 청사진도 그중 하나다. 본격적인 보화각 공사는 간송이 경기도에 '성북정 97번지' 건축부지증명원을 제출한 1938년 3월 22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설계도엔 벽돌과 철근 콘크리트 건축 구조와 모던한 건물 외관, 반원적 돌출 구조와 비대칭이 빚어낸 건물의 동적 표현 등 보화각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보화각은 문화보국을 꿈꾸던 간송한테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응접실과 서재의 가구부터 전시관 진열장까지 간송이 일일이 직접 스케치해 보관했을 정도였다. 이번에 공개된 간송의 진열장 스케치를 통해 그가 덕수궁미술관과 도쿄제실박물관, 오사카미술관 등 국내외 미술관을 찾아 진열장을 참조했다는 점이 확인된다.간송이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서화·골동품 구입 내용을 직접 기록한 '일기대장'도 처음 공개됐다. 조선미술관이나 경성미술구락부 등 미술 경매에 참여하고, 오세창 등 당대 컬렉터들과 교류하며 유물을 모은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간송미술관은 일기대장을 토대로 간송이 보화각 설립 이전까지 수집한 것으로 파악되는 '초기 컬렉션'을 선별하고, 이중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유물들을 중심으로 이번 전시를 꾸렸다.이번 전시에서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궁중화가 고진승의 나비 그림 실물이 처음 발견됐다. 신윤복과 함께 조선후기 풍속화의 맥을 잇는다고 평가받는 백은배의 화첩 4폭도 모습을 드러냈다. 서화 합작 작품으로서는 대한제국 주미공사관원 강진희(1851~1919)와 청나라 공사관원 팽광예(1844~?)의 작품 8점이 실린 '미사묵연 화초청운잡화합벽첩'의 전체 모습이 최초 공개됐다.전인건 관장은 "앞으로도 간송미술관은 이전처럼 매년 봄·가을 정기 전시를 통해 우리 미술 연구를 위한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이전 전시 기간(2주)보다 늘린 한 달 반가량 전시를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무료지만 관람 예약은 1일 8회, 회당 100명으로 제한한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