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의 '바로미터' 구리 가격, 2년 만에 '최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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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전력망 개선 수요 확대에세계 경기의 바로미터로 일컬어지는 구리 가격이 톤(t)당 1만달러를 돌파하며 2년 만에 최고가를 썼다. 구리는 전선, 가전제품, 전기차, 풍력 터빈 등 산업 전반에 다양하게 활용되기 때문에 경기 선행지표라는 의미에서 ‘닥터코퍼’라고도 불린다. 최근 데이터 센터 건설 확대, 미국 전력망 개선 정책 등으로 수요는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남미 광산 폐쇄, 중국 제련소의 구리 감산 등으로 공급은 부족해져 구리 가격 상승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톤당 1만달러 돌파
○AI發 수요 확대…올들어 16% 상승
26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구리 선물(3개월물) 가격은 장중(오후 5시경) t당 1만31.50달러를 기록해 2022년 4월 이후 처음으로 1만달러를 넘겼다. 종가는 9965.5달러로 1만달러에 근접했다. 지난 1년여간 t당 8000~8500달러선에서 움직였던 구리 가격은 지난달부터 큰 폭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이달 t당 9000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들어서만 16.4% 올랐고 연저점(2월 9일·8169달러)보다는 21.9% 뛰었다.구리는 전선 제조원가의 90%를 차지한다. 이에 구리 가격은 전력 수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장에서는 구리 가격 상승 배경으로 데이터 센터 건설 확대를 꼽았다.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데이터 처리 용량을 확보하기 위해 데이터 센터 증설에 나서고 있는데, 여기에 구리 배선이 대거 활용되기 때문이다. 미국 구리개발협회(CDA)에 따르면 데이터 센터 구축에는 1메가와트(MW)당 27t의 구리가 사용된다. 원자재 중개업체 트라피구라는 “AI 서버를 구동하기 위한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서 구리 수요는 2030년까지 100만t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에 전했다.○신재생 에너지의 핵심
미국의 제조업 육성 정책과 친환경 정책 추진 결과 구리 가격이 상승세를 탔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리는 태양광 패널, 풍력 발전용 터빈에 사용돼 신재생 에너지 전환의 핵심으로 간주된다. 또한 전기차 사용이 늘어날수록 구리 수요도 증가한다. 전기차 모터에 구리가 사용되고 배터리 핵심 소재인 음극재 역시 구리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전기차 한 대당 평균 83㎏의 구리가 사용되는데, 이는 내연 기관차(21.8㎏)의 3.8배에 달하는 수치다.바이든 행정부의 정책도 구리 수요를 더욱 높일 전망이다. 미국 백악관은 25일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한 전선망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백악관은 이날 미국 전력망 강화, 청정에너지 관련 일자리 확대, 환경 오염 축소를 위한 주요 조치를 발표하며 미국 송전 네트워크 용량을 확장하기 위해 향후 5년 동안 10만마일(약 16만㎞)의 송전선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언급했다. 전력망 혼잡을 줄이고 청정에너지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백악관은 기대하고 있다.
○공급은 위축상태
뜨거운 수요와 달리 공급은 불안정하다. 주요 생산지인 남아메리카 광산에서 구리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세계 구리 광석 공급량의 1.5%를 차지하는 파나마 코브레 구리광산은 파나마 법원의 개발 위헌 명령에 따라 지난해 말 폐쇄가 결정됐다. 페루 최대 구리 생산지 라스밤바스 광산은 노조 파업으로 생산 중단 위기에 처했다. 글로벌 광산기업 앵글로 아메리칸은 수익 악화를 막기 위해 올해와 내년에 원자재 생산량을 줄일 계획이다.구리 수요가 증가한다고 해서 광산업체들이 곧바로 구리 공급을 늘릴 수도 없다. 구리 광산 개발은 허가에만 최소 10년이 걸린다. 사업 타당성 검토, 인허가, 자금조달, 건설을 거치려면 최소 20년 이상이 소요된다. 원자재 시장 조사 업체 벤치마크 미네랄스 인텔리전스의 수석 구리 애널리스트 용청자오는 “새로 채굴되는 구리 자원이 부족한 상황은 에너지 전환의 주요 장애물”이라고 평가했다.세계 구리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제련소(원자재를 금속으로 정제)도 수익 악화를 이유로 지난달 중순 감산에 합의했다. 중국 장시코퍼, 차이나코퍼, 동릉비철금속, 진추안 그룹 등은 구리 생산량을 5~10%가량 줄이겠다고 밝혔다. 현물 시장에서 구리 정광을 처리하는 수수료가 10년여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서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구리 가격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씨티은행은 작년 말 구리 가격이 2025년까지 t당 1만5000달러를 찍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6년 1만2000달러까지, 골드만삭스는 향후 1년간 1만2000달러까지 상승 할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경제/오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