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빗나간 성장률 예측…중앙은행들은 왜 실패하는가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입력
수정
지면A18
각국 성장률 예상치중국을 시작으로 각국이 올해 1분기 성장률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1분기 성장률의 공통적인 특징은 예상치가 크게 빗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5.3%로 예상치 4.6%를 크게 웃돌았고 미국은 예상치 2.5%를 크게 밑돈 1.6%로 나왔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1분기 성장률도 마찬가지다.
오차율 커지며 혼선
버냉키 "중앙은행들
노후화된 모델 사용"
KEDI30 등이 도입한
큐브 방식 모델 주목
예상치가 경제주체의 안내판 역할을 하기 위해 추세는 맞아야 하고 절대오차율이 최대 30%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올해 1분기 성장률 예상치는 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오히려 시장에 혼선을 초래했다. 골디락스, 고원경제와 같은 각종 호황의 명칭이 붙었던 미국 경제는 갑작스럽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미국 중앙은행(Fed) 역사상 모델을 가장 중시하고 경제지표에 의존하는 통화정책을 도입한 벤 버냉키 전 의장은 참다못해 “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너무 노후화된 모델을 쓰고 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중앙은행의 1선 목표인 물가 예측을 제대로 못하고 어떻게 통화정책을 추진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 몇 가지 모델의 한계를 짚어본다.첫째, 경제변수의 인식 문제다. 최근과 같은 융복합 시대에서 경제 여건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 변수가 수요 측 요인인지 공급 측 요인인지 식별하기란 쉽지 않다. 종전에 수요 측 요인으로 인식되던 변수도 공급 측 요인으로 변할 때가 많다. 전제조건인 인식 문제가 흐트러질 때는 각종 모델의 설계부터 어려워진다.
둘째,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도 문제다. 금융위기 이후 양 부문이 따로 노는 이분법 경제에서는 성장률과 같은 경제변수를 예측할 때 많이 활용하는 연립방정식 모델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금융이 실물을 후행(following)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leading)하는 시대에서는 예측치와 달리 정반대 상황이 발생할 때도 있다.셋째, 연립방정식 간 충돌과 다중 공선성 문제다. 초불확실성 시대에 경제 진단과 예측에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오는 장애 요인이다. 시계열 자료 간에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변수(dummy)까지 사용하면 모델에서 나온 예측치의 의미는 퇴색하고 오히려 일반인의 감(感)으로 때리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
넷째, 경기 순환 진폭이 커지는 순응성과 주기가 짧아지는 단축화도 문제다. 미국처럼 월별 지표는 전월비, 분기별 지표는 전기비 연율 방식을 취할 땐 기저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코로나19 이후처럼 경기 순환이 없어지는 노 랜딩 국면의 자료와 경기 순환이 나타날 때의 자료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경기 진단과 예측을 할 수는 없다.
다섯째, 정성적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다. 성장률과 같은 예측은 모델에서 나온 정량적 파트와 예측자의 주관적 판단이 가미되는 정성적 파트로 나뉜다. 모델에서 나온 예측치만 발표하다 보면 경제주체가 느끼는 체감적인 경기 진단과 앞날을 보는 시각 간에 괴리가 심해져 ‘예측치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또 다른 신뢰 문제에 봉착한다.요즘은 종전의 이론과 규범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뉴노멀’이란 용어가 나온 지 오래됐다. 최근에는 미래 예측까지 어렵다고 해서 ‘뉴 애브노멀’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새로워진 경제 환경에서 종전의 모델을 고집하면 버냉키 전 의장의 경고대로 ‘노후화됐다’는 혹평을 들을 수밖에 없다.
예측력 저하에 시달리는 전망 기관과 중앙은행도 새로운 예측 모델 개발에 고심 중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예측 주기를 짧게 가져가는 방안이다. 이제는 분기 전망이 보편화된 가운데 투자은행(IB)은 월별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금융이 실물에 우위인 시대에 맞춰 국제통화기금(IMF)은 기업취약지수(CVI), 일본은행(BOJ)은 대차대조법(B/S) 방식을 도입했다.
미국 경제 사이클 연구소(ECRI: Economic Cycle Research Institute)는 한 나라의 경제가 고도의 복합 시스템인 점에 착안해 큐브 방식을 응용하고 있다. ECRI의 ‘경제 사이클 큐브’는 크게 성장과 고용, 물가로 구성된다. 성장은 다시 무역과 국내 경제활동으로, 국내 경제활동은 부문별 장단기 선행지수로 구분된다. ECRI는 이 큐브를 통해 100개 이상의 선행지수를 통합해 보다 정확하고 신뢰를 받는 예측을 추론해 낸다.
2년 전 한국경제신문이 내놓은 KEDI30이 시간이 갈수록 유용성을 높게 평가받는 것도 지수 산출 과정에 큐브 방식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정보기술(IT) △플랫폼 △미래기술 △바이오 등 4차원으로 출발했지만 6차원, 8차원으로 확장 가능하다. 4차원 큐브의 각 면은 혁신성, 미래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을 기준으로 선출한 기업으로 구성했지만 투명성, 정직성 등을 추가해 다양화할 수 있다. 국내 증권사도 참조해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