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베네치아 가는 데 129년…사상 첫 비엔날레 간 교황, 여성 교도소도 품었다

129년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 교황 방문
여성 교도소에서 열린 바티칸 전시 관람
"예술은 차별을 없애는 데 사용돼야 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대성당 앞 광장에 모터 보트를 타고 도착한 뒤 시민들한테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Reuters), Yara Nardi
"교도소는 도덕적·물질적 재탄생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수감된 여성과 남성의 존엄성을 무시하지 않고, 이들의 재능과 능력을 존중하는 보살핌을 통해 말이죠."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주데카 여자 교도소를 찾아 이같이 말했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일제히 보도했다. 주데카 교도소는 지난 20일 개막한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88개 참가국 가운데 하나인 바티칸시국 파빌리온(국가관)이 들어선 곳으로, 재소자들이 전시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교황, 사상 처음 베네치아 비엔날레 방문

가톨릭 교구 정점에 있는 교황이 '세계 최대의 미술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찾은 건 129년 비엔날레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개인으로선 2013년 즉위 이후 첫 번째 베네치아 방문이자 올해 로마를 벗어난 첫 공식 일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에서 미사를 마치고 신도들한테 인사하고 있다. /EPA, Andrea Merola
외신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8시께 헬리콥터를 타고 주데카 교도소에 도착해 80여명의 재소자와 직원, 자원봉사자와 일일이 악수했다. 교황은 "감옥은 가혹한 현실이며 과밀 수용, 시설 및 지원 부족, 폭력 사건 등의 문제로 인해 수감자들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며 "누구의 존엄성도 훼손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모두 용서받아야 할 실수와 치유해야 할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며 "예술이 인종차별과 불평등, 가난한 사람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데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성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떠나고 있다. ANDREA PATTARO / AFP 연합뉴스
최근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기도 한 교황은 모터보트와 골프 카트, 휠체어를 타고 도시의 운하를 돌아봤다. 이어 도심에 있는 산 마르코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이 일이 쉽지 않으니,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달라"고 했다.87세 고령인 그는 이날 일정을 시작으로 5월 베로나, 7월 트리에스테 등 이탈리아 도시를 두 차례 더 찾을 예정이다. 그 사이 6월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9월엔 인도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싱가포르를 순방을 앞두고 있다.

재소자마저 포용…파격 메시지 담은 바티칸 국가관

올해 바티칸시국은 이례적으로 전시관을 여성 교도소에 설치했다. 현지 매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파격 행보를 이어왔는데, 이번 결정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분석했다.

전시장이 마련된 주데카 교도소는 그동안 여성을 비롯한 소외된 이들의 공간으로 활용돼왔다. 13세기 베네치아 남부의 외딴 섬에 지어진 뒤 수녀원, 매춘부를 위한 교화소, 병원 등으로 사용됐다. 최근 여성 전용 수감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클레어 퐁텐이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에 주데카 교도소에 설치한 '우리는 밤새 당신과 함께합니다'. /작가 인스타그램 캡쳐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작가들의 작업도 포용했다. 현대미술계의 가장 논쟁적 작가 중 하나인 클레어 퐁텐은 교도소 외벽에 '우리는 밤새 당신과 함께합니다(이탈리아어·Siamo con voi nella notte)'란 네온사인을 전시했다. 클레어 퐁텐은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주제이기도 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시리즈를 만든 페미니즘 작가 그룹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제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에 주데카 여성 교도소에 설치한 'Father'(2024). 베네치아=김보라 기자
'미술계의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거대한 발바닥 벽화 'Father'(2024)도 걸렸다. 카텔란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에 맞고 쓰러진 모습을 극사실적 조각으로 묘사한 '아홉 번째 시간'으로 유명한 작가다. 1999년 폴란드 바르샤바에 전시됐던 이 작품은 종교인들로부터 신성모독이란 항의를 받고 철거되기도 했다.

'나의 눈과 함께(With My Eyes)'란 제목으로 열린 전시는 80여명의 재소자가 참여해 직접 방문객을 안내하고 작품을 설명한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브루노 라신 팔라초그라시미술관 디렉터는 "방문객들이 단지 수동적으로 전시를 관람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이곳에서 전하려는 메시지의 '목격자'가 될 수 있다는 바람을 담았다"라고 설명했다.바티칸시국 국가관 전시는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끝나는 11월 24일까지 열린다. 방문을 위해 사전 예약은 필수다.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주테카 여성 교도소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도소에 마련된 바티칸시국 국가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EPA Vatican Media 제공,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에서 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REUTERS), Claudia Greco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대성당 앞 광장에서 시민들과 만나기 위해 도착한 뒤 모터 보트에 앉아 있다. /로이터(Reuters), Yana Nardi
안시욱/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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