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전 드라마' 집필한 김헌곤 "야구장에서 하루하루 감사"

8연패 끊은 9회 대타 2루타…삼성 분위기 바꾼 결정적 장면
은퇴 위기 극복하고 타율 0.328에 홈런 2방 '베테랑의 진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시즌 초반 8연패에서 벗어나고 상승세 원동력을 얻은 계기는 6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이다. 개막 2연전에서 승리하고 이후 9경기에서 1무 8패로 추락해 꼴찌로 주저앉은 삼성은 당시 광주에서 리그 1위 KIA를 만났다.

4-4로 팽팽하게 맞선 9회 1사 3루 공민규 타석에서 삼성이 내민 대타 카드는 김헌곤(35)이었다.

주전에서 밀려난 지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고, 지난 시즌에는 고작 6경기에 출전해 안타를 하나도 치지 못했던 베테랑 선수가 갑자기 대타로 나타난 것이다. 김헌곤은 많은 사람의 예상을 깨고 KIA 전상현을 상대로 좌중간 결승 2루타를 터트렸다.

2022년 8월 17일 이후 596일 만에 1군에서 나온 안타다.

김헌곤의 결승타를 앞세운 삼성은 KIA에 7-4로 이겼다. 연패를 끊은 6일 광주 KIA전부터 삼성은 20경기에서 16승 4패의 믿기 힘든 상승세를 탔고, 18승 12패 1무로 현재 리그 3위를 달린다.

대타 김헌곤의 안타 한 방이 삼성의 분위기를 바꿔놓은 것이다.

긴 세월 슬럼프에 시달리며 연봉이 6천만원까지 떨어진 30대 중반 베테랑 김헌곤이 쏘아 올린 멋진 '역전 홈런'이다.
김헌곤은 2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전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내가 상승세의 시발점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감독님, 코치님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고 어린 선수들이 잘해줬다.

그리고 강민호, 오승환, 임창민 형 등 선배들이 역할 해주면서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고 자세를 낮췄다.

2011년 삼성에 입단한 김헌곤은 2018년 141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0, 11홈런, 71타점을 올리며 호타준족 외야수로 진가를 발휘했다.

이후에도 탄탄한 수비와 일발 장타로 삼성 외야를 지키던 김헌곤은 프리에이전트(FA) 자격 취득을 앞둔 2022년부터 시련과 마주했다.

2022년 타율 0.192에 1홈런, 20타점으로 성적이 급격하게 하락했고, 지난해에는 허리 수술과 재활을 소화하느라 1군에 고작 6경기만 출전했다.

투철한 프로의식 덕분에 사실상 '플레잉 코치'에 가까운 역할을 기대하고 올 시즌 재계약했는데, 시즌 초반 그의 활약상은 기대 이상이다.
백업 외야수로 28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8(52타수 17안타), 2홈런, 7타점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올 시즌 활약상에 관해 김헌곤은 "기술적으로 크게 변한 건 없다.

심리적인 게 큰 것 같은데, 좋은 결과가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작년하고 바뀐 건 심리적으로 편안해진 것밖에 없다.

욕심을 버렸다"고 설명했다.

김헌곤에게 큰 울림을 준 건 팀 선배 백정현(36)의 조언이다.

김헌곤은 "잘하려고 하다 보니 결과가 안 나왔을 때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백정현 선배랑 자주 이야기하는데, '잘하려고 하지 말아보라'는 말을 하더라. 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잘하겠다고 생각하는 대신 타석과 수비에 집중력을 쏟으라는 말이더라"고 했다.

이어 "결과를 의지로 바꿀 수 없다는 걸 느끼고 나서부터는 집중도 잘 되고, 마음도 편하더라. 작년에 야구를 그만둘 뻔했는데 그래서 자연스러운 마음이 생겼나 싶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김헌곤이 안타를 치면 더그아웃에서 자기 일보다 더 좋아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성실하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답받는다'는 걸 입증한 베테랑 선배에 대한 찬사다.

김헌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진심으로 다른 사람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고마워했다.

또한 그는 "제가 팬들에게 기쁨을 드렸다면 정말 다행이다.

우리 인생이 원하는 대로 다 흘러가는 건 아니다.

힘든 시간 겪고 계신 분 계실 텐데, 정말 포기하지 말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며 자기 경험에 빗댄 조언도 잊지 않았다.

험난한 시간을 거쳐 1군 무대에서 다시 빛을 본 김헌곤의 욕심은 많지 않다.
개인 목표도 없다.

상투적인 말 같아도, 팀 승리만 생각한다.

김헌곤은 "목표는 아예 없고, 그저 팀이 이기면 된다.

제가 경기 나가고 안 나가고 이런 것도 중요하지 않다.

물론 출전하면 열심히 하겠지만, 무조건 팀이 이기는 것만 생각한다"고 했다.

한때 피하고만 싶었던 야구장이 올해는 행복한 곳으로 바뀌었다.

김헌곤은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시간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느끼고 나니 감사하지 않은 순간이 없더라"면서 "언제까지 유니폼 입을지 모르겠지만, 팀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무조건 돕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