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아픔 때문에 회피했던 父사랑…신들린 듯 소설로 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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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작가, 자전적 소설 '아버지의 광시곡' 통해 그 시대의 초상 되살려
"독자들에게 아버지의 삶 돌아보는 계기 됐으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정수(精髓)를 내리는 과정이었는데, 추억이 주는 내적인 힘이 있더군요. 그래서 신들린 듯이 쓴 것이 아닌가 싶어요.
쓰면서 울기도 웃기도 했습니다.
"
격동의 현대사의 충격을 오롯이 받아낸 가족사와 그 시절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자전적 소설 '아버지의 광시곡'을 펴낸 조성기(73) 작가는 30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연 출간간담회에서 소설을 쓰며 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보고는 많이도 웃고 울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광시곡'은 박정희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1961년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죽음을 맞은 1979년까지를 주 무대로 부산지역 초등교원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용공분자로 몰려 실직자로 전락한 작가의 부친에 관한 이야기다.
전작 '통도사 가는 길' 등의 작품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소설화해온 작가는 자전적 이야기가 짙게 담긴 이번 작품을 통해 아버지의 고단하고도 애달팠던 생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했다.
5·16이 일어나고 며칠 되지 않아 검은 점퍼 차림의 두 남자가 수업 중인 아버지를 교실 밖으로 불러낸다. 그들의 차를 함께 타고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는 경찰서와 파출소를 전전하고, 마침내 아버지가 육군형무소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나'와 가족들은 형무소 바깥으로 뚫린 간이화장실 창문을 통해 아버지와 겨우 만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6개월 만에 출감한 아버지는 교사직에서 해직된 뒤 술로 세월을 흘려보내게 된다.
작품에는 아버지가 만취한 채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욕을 내뱉거나, 고시를 그만두고 종교에 귀의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분노해 속옷을 찢어버린 뒤 밖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 아들이 활동하는 선교단체에 쳐들어가 "야, 이놈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이러고들 있어?"라고 고함을 치는 장면 등 시대의 초상과도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담겼다. 소설의 외양을 띄기는 했지만 이 책은 작가가 본인과 아버지, 가족, 친구들을 등장시키고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소설로 쓴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의 30% 정도는 실제 아버지의 삶을 기술했고 나머지 70%는 내가 아버지의 기억을 되살려 썼다.
전체가 완전히 실화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재해석되는 과정을 작품에서 고스란히 보여준다.
교사 동료들의 눈에 아버지는 노동운동의 지도자로서 단식투쟁에 앞장서고 동료들을 위해 복직마저 양보한 투사였지만, 작가에게는 까칠한 턱수염을 얼굴에 마구 비벼 사랑을 표현하는 다정한 아버지이면서 때로는 분노에 가득 찬 주정뱅이 실직자이기도 했고, 그토록 거부했던 종교를 받아들이고서 한없이 종교에 기대는 약한 존재이기도 했다.
작품에는 특히 학창 시절 공부를 유달리 잘했던 작가가 부친의 기대를 저버리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조성기 작가는 당시 평준화 이전의 명문 경기고에 전체 8등으로 입학해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으로 두각을 보인 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는 등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수재였다.
그러나 대학 진학 뒤 전공 공부는 뒤로한 채 점점 문학과 종교에 빠져들었고, 기독교 선교단체에 들어간 뒤에는 사법시험을 더는 응시하지 않겠다고 부모에게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대학 때 종교활동에 깊이 빠져들었는데, 문학도 고시도 버리는 것을 본 아버지가 문학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지요.
3학년 여름 방학 때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사법고시를 안 보겠다고 선언했더니, 아버지가 러닝셔츠를 찢으며 발광하듯이 뛰쳐나가시기도 했습니다.
"
작가는 이 책의 원고를 페이스북에 46일간 매일 원고지 20매가량의 분량을 연재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보통 30명 정도가 '좋아요'를 누르는데, 연재할 때 보통 300~400개의 '좋아요'가 달렸다"면서 "댓글을 쓰지 않던 페친(페이스북 친구)들도 세계 각국에서 댓글을 달고, 출판사에서도 출판을 제의해오는 등 독특한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이 책은 페이스북이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집필 방식 덕분인지 한 단락이 하나의 엽편(葉篇) 소설처럼 짧은 이야기로 완결성을 가져 쉽게 읽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아버지의 광시곡'의 주인공 부친은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숨진 뒤 몇 달 지나지 않은 1980년 1월 5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작가는 "박정희에 대한 복수심이 삶의 원동력이 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10·26 직후 몇 달 뒤 돌아가셨다"면서 "10·26 때 본인의 건강도 위중하신데 전쟁이 날지 모르니 빨리 부산으로 피난을 오라고 하신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돌아봤다. 작품에는 부친이 돌아가신 지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작가 본인도 일흔이 훌쩍 넘은 고령임에도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절절하게 흐른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자기 아버지의 인생을 세심히 살펴보고, 자신들이 아버지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작가는 작품의 끝에는 만시지탄의 마음을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의 뜻과는 먼 길을 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사랑했음에 틀림없었다.
내가 끈질기게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한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사랑받는 아픔을 회피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중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아버지의 사랑을, '사랑받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받기를 원하지만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
한길사. 280쪽.
/연합뉴스
"독자들에게 아버지의 삶 돌아보는 계기 됐으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정수(精髓)를 내리는 과정이었는데, 추억이 주는 내적인 힘이 있더군요. 그래서 신들린 듯이 쓴 것이 아닌가 싶어요.
쓰면서 울기도 웃기도 했습니다.
"
격동의 현대사의 충격을 오롯이 받아낸 가족사와 그 시절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자전적 소설 '아버지의 광시곡'을 펴낸 조성기(73) 작가는 30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연 출간간담회에서 소설을 쓰며 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보고는 많이도 웃고 울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광시곡'은 박정희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1961년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죽음을 맞은 1979년까지를 주 무대로 부산지역 초등교원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용공분자로 몰려 실직자로 전락한 작가의 부친에 관한 이야기다.
전작 '통도사 가는 길' 등의 작품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소설화해온 작가는 자전적 이야기가 짙게 담긴 이번 작품을 통해 아버지의 고단하고도 애달팠던 생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했다.
5·16이 일어나고 며칠 되지 않아 검은 점퍼 차림의 두 남자가 수업 중인 아버지를 교실 밖으로 불러낸다. 그들의 차를 함께 타고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는 경찰서와 파출소를 전전하고, 마침내 아버지가 육군형무소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나'와 가족들은 형무소 바깥으로 뚫린 간이화장실 창문을 통해 아버지와 겨우 만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6개월 만에 출감한 아버지는 교사직에서 해직된 뒤 술로 세월을 흘려보내게 된다.
작품에는 아버지가 만취한 채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욕을 내뱉거나, 고시를 그만두고 종교에 귀의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분노해 속옷을 찢어버린 뒤 밖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 아들이 활동하는 선교단체에 쳐들어가 "야, 이놈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이러고들 있어?"라고 고함을 치는 장면 등 시대의 초상과도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담겼다. 소설의 외양을 띄기는 했지만 이 책은 작가가 본인과 아버지, 가족, 친구들을 등장시키고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소설로 쓴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의 30% 정도는 실제 아버지의 삶을 기술했고 나머지 70%는 내가 아버지의 기억을 되살려 썼다.
전체가 완전히 실화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재해석되는 과정을 작품에서 고스란히 보여준다.
교사 동료들의 눈에 아버지는 노동운동의 지도자로서 단식투쟁에 앞장서고 동료들을 위해 복직마저 양보한 투사였지만, 작가에게는 까칠한 턱수염을 얼굴에 마구 비벼 사랑을 표현하는 다정한 아버지이면서 때로는 분노에 가득 찬 주정뱅이 실직자이기도 했고, 그토록 거부했던 종교를 받아들이고서 한없이 종교에 기대는 약한 존재이기도 했다.
작품에는 특히 학창 시절 공부를 유달리 잘했던 작가가 부친의 기대를 저버리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조성기 작가는 당시 평준화 이전의 명문 경기고에 전체 8등으로 입학해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으로 두각을 보인 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는 등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수재였다.
그러나 대학 진학 뒤 전공 공부는 뒤로한 채 점점 문학과 종교에 빠져들었고, 기독교 선교단체에 들어간 뒤에는 사법시험을 더는 응시하지 않겠다고 부모에게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대학 때 종교활동에 깊이 빠져들었는데, 문학도 고시도 버리는 것을 본 아버지가 문학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지요.
3학년 여름 방학 때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사법고시를 안 보겠다고 선언했더니, 아버지가 러닝셔츠를 찢으며 발광하듯이 뛰쳐나가시기도 했습니다.
"
작가는 이 책의 원고를 페이스북에 46일간 매일 원고지 20매가량의 분량을 연재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보통 30명 정도가 '좋아요'를 누르는데, 연재할 때 보통 300~400개의 '좋아요'가 달렸다"면서 "댓글을 쓰지 않던 페친(페이스북 친구)들도 세계 각국에서 댓글을 달고, 출판사에서도 출판을 제의해오는 등 독특한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이 책은 페이스북이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집필 방식 덕분인지 한 단락이 하나의 엽편(葉篇) 소설처럼 짧은 이야기로 완결성을 가져 쉽게 읽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아버지의 광시곡'의 주인공 부친은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숨진 뒤 몇 달 지나지 않은 1980년 1월 5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작가는 "박정희에 대한 복수심이 삶의 원동력이 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10·26 직후 몇 달 뒤 돌아가셨다"면서 "10·26 때 본인의 건강도 위중하신데 전쟁이 날지 모르니 빨리 부산으로 피난을 오라고 하신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돌아봤다. 작품에는 부친이 돌아가신 지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작가 본인도 일흔이 훌쩍 넘은 고령임에도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절절하게 흐른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자기 아버지의 인생을 세심히 살펴보고, 자신들이 아버지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작가는 작품의 끝에는 만시지탄의 마음을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의 뜻과는 먼 길을 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사랑했음에 틀림없었다.
내가 끈질기게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한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사랑받는 아픔을 회피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중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아버지의 사랑을, '사랑받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받기를 원하지만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
한길사. 28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