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 스토커 말로는 찜찜하지만…마지막 장면에서는 따뜻한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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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레인디어영국 런던의 한 술집. 안쓰러운 행색의 마사(제시카 거닝 분)가 멍하니 앉아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본업인 바텐더 도니(리처드 개드 분)가 따뜻한 홍차 한잔을 무료로 건넸을 때 그녀는 환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시작한다. “저는 잘나가는 변호사예요. 고급 저택도 몇 채나 있죠.” 친절을 베푼 도니는 몰랐다. 마사가 악명 높은 스토커란 사실을. 마사는 도니에게 저속한 내용의 이메일을 셀 수도 없이 보낸다.
영국 작가가 겪은 실화가 바탕
명연기와 빠른 전개로 몰입감
‘아기 순록’이라는 의미의 넷플릭스 7부작 ‘베이비 레인디어’는 호러 스릴러처럼 시작한다.마사는 도니의 스탠드업 공연장에 난입해 독설을 퍼붓는다. 그녀의 이야기는 도니의 썰렁한 농담보다 더 큰 객석 반응을 얻는다. 시리즈의 뼈대는 영국 작가인 개드가 직접 겪은 이야기다. 드라마의 각본과 연출은 물론 주인공 역할 또한 그가 맡았다. 원작은 그의 모놀로그(1인극) 연극이지만 넷플릭스로 와서 거닝의 훌륭한 연기가 더해졌다. 빈틈없는 신 연결, 빠른 극 전개 덕분에 몰입감이 높다.
극도로 집착하는 여자하면 영화 ‘미저리’(1991)를 떠올리게 되는데 마사는 전혀 용의주도하지 않다.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서 생쥐처럼 웅크린 그녀의 모습은 때때로 안쓰럽다. 도니는 이런 마사의 스토킹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마사는 묻는다. “당신도 나처럼 상처받은 적 있죠?”
마사의 질문에 도니는 꼭꼭 숨긴 과거를 되짚기 시작한다. 도니는 성적인 혼란을 겪으며 방황 중이다. 도니의 고백은 어떤 이에겐 불편하고 충격적일 수 있다.시리즈는 치유와 감동을 거쳐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시점에 더 큰 복병이 나타난다. 자신을 아기 순록으로 부르는 스토커보다 더 어이없고 버거운 것들이다. 위대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 그럴 수 없는 현실 사이에 있는 것들. 이 때문에 드라마는 최후의 순간까지 팽팽한 갈등을 놓지 않는다.
뭐 하나 해결되는 것 같지 않고 혼란스럽게만 느껴진다면 이 때문일 것이다. 악질 스토커의 속 시원한 말로를 기대했다면 불만족스러울 가능성이 높다.
그런 시청자들도 마지막 장면에선 여운을 느낄 것이다. 뜻밖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 어떤 이는 수미상관(처음과 끝을 대응시키는 구성법)을, 어떤 이는 희망 같은 것을 떠올릴지 모른다. 우리는 최악의 적대자와 싸우며 소중한 것을 깨닫곤 한다. 그 상대가 마사 같은 스토커는 아니길 바라지만.
김유미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