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시장실패보다 정부실패가 걱정되는 여소야대
입력
수정
지면A22
다수결에 따른 유권자 선택이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역대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 결과는 충격적이다. 당장 정부와 여당의 국정 운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연금 개혁과 같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구조개혁은커녕 통상적인 정책 집행마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볼모가 될까 걱정이 앞선다.
항상 합리적·효율적이진 않아
60개국서 동시다발 선거로
정부의 시장 개입 우려 커져
여소야대가 재정 포퓰리즘에
'날개' 다는 발판 돼선 안 돼
김준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
197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는 민주사회의 의사결정 방식인 다수결 투표(majority voting)에 관한 이론이다. 이 정리의 내용도 충격적이다. 요약하면, 유권자의 합리적 선호를 반영하면서 언제나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다수결 투표 방식은 없다는 것이다. 실증하기 어려운 이론이지만 논지의 핵심은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치적 의사결정이 비효율적이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적 선택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국가 경제의 자원 배분을 담당하는 두 가지 주체는 시장과 정부다. 완전경쟁 상태의 시장이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 경제학의 기본 명제다.
물론 현실은 완전경쟁과 거리가 있기에 시장실패가 발생하며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보이는 손’(visible hand)도 필요하다. 하지만 보이는 손에 의한 자원 배분에는 정부실패라는 위험이 따른다.
올해는 세계 경제 총생산의 60%를 차지하는 60여 개국에서 국가 권력 지형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선거를 치렀거나 예정돼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부실패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증폭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애로 교수의 통찰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올해 국제통화기금(IMF) 춘계 연차총회 연설에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도 세계적인 선거의 해를 맞아 규제 개혁, 재정 건전성 회복, 중앙은행 독립성 등을 강조하고 나섰다. 보이지 않는 손보다 보이는 손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다.게오르기에바 총재의 우려에 지난 총선 결과를 대입해 보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재정 건전성과 규제 개혁이다. 재정은 집행 주체가 선출된 권력이라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정치적이고 집행 방식은 통화정책과 달리 차별적이다. 누구는 세금을 많이 내고 재정 지원은 적게 받지만 또 다른 누구는 세금을 적게 내고 많은 재정 지원을 받는다. 이런 차별성은 제한된 공적 자원으로 민주사회가 요망하는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재정 건전성도 결국은 세대 간 형평을 지키기 위한 재정 차별성일 뿐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의 초저금리로 인해 세계적으로 국가부채가 크게 늘고 재정 여력이 축소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은 추세적인 출산율·성장률 하락에 구조개혁이라는 정공법으로 대응하기보다 재정 확대라는 손쉬운 임시방편으로 일관하면서 재정 중독이 심각한 상황이다.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세계적으로 재정 건전성 회복이 시급해진 시점에 역대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 상황을 맞은 만큼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야권이 주장해 온 기본소득, 전 국민 지원금 등 수많은 포퓰리즘 공약이 본격적으로 입법화되면 형평을 위한 재정의 차별성이 무력해지면서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되는 정부실패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재정 중독은 불치병 수준으로 깊어질 것이다.규제 개혁으로 눈을 돌리면 긴장의 강도는 더 높아진다. 시장실패를 과장하거나 빌미 삼아 정치권력이 과도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남발해 발생한 거대한 정부실패를 책임지지 않는 관행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여소야대가 이런 불행한 관행에 더 큰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모든 사람이 ‘네’라고 답할 때 소신에 따라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는 때로는 존경의 대상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건전재정과 규제 개혁에 무턱대고 반대하고 거슬러 가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만용이다. 책임지지 않는 만용이기에 더욱 위험하다.
선거는 끝났지만, 국정에 대한 국민의 감시자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