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경영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

고경봉 증권부장
아워홈이라는 회사가 있다. 40년간 단체급식을 업으로 해온 회사다. 매출 2조원, 임직원이 1만여 명에 달한다. 지금 이 회사는 갈림길에 서 있다. 자립할지, 아니면 다른 곳에 팔지를 놓고서다. 그런데 그 중차대한 결정권을 쥔 사람은 회사 경험이 전무한 ‘전업주부’다.

시작은 자녀들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됐다. 지분 39%를 가진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과 20%를 보유한 막내 여동생 구지은 부회장이 다투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지분 20%를 가진 장녀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바로 그 주부 말이다. 3년 전엔 이 장녀의 지지 덕에 여동생인 구 부회장이 경영권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구 부회장이 신사업에 투자한다며 배당을 줄이자, 장녀는 회사를 매각하려는 오빠 편으로 돌아섰다. 그 장녀는 내친김에 사내이사로 참여했고, 여동생은 이사회에서 내쫓길 처지다.

주부와 아빠친구가 정한다?

장녀의 결정은 주주로서 고유한 권리 행사다. 하지만 직원 가족과 협력업체를 합치면 수만 명의 생계가 걸린 회사의 운명을 경영 수업을 받아본 적 없고, 경험도 없는 이가 결정하는 상황을 임직원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미약품도 상황이 비슷하다. 한때 신약 수출 신화를 쓴 굴지의 제약사다. 51년간 갖은 풍파를 겪으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창업자가 작고하자 기업의 앞날을 두고 딸과 아들들이 맞붙었다. 다른 회사와 통합하느냐, 아니면 사실상 사모펀드에 매각하느냐를 놓고서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정작 승부의 향방을 결정지은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아빠 친구’다. 작고한 창업자의 절친이자 2대주주인 한 금형업체 오너가 아들들을 지지하면서 딸이 추진하던 통합작업은 무산됐다. 한때 대한민국 1위 제약사였던 한미약품의 운명이 굴착기와 금형부품 사업에 평생을 몸담아온 사업가의 손에 정해졌다.

가족들의 난장, 기업은 어쩌나

요즘 우리나라에선 이런 남매간, 부자간, 모녀간, 형제간 난(亂)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총수 일가의 다툼이야 어제오늘 일이겠느냐마는 최근의 갈등은 결이 다르다. 2대에서 3대로, 4대로 승계가 진행되면서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뚝뚝 떨어지고 그마저도 형제자매 친인척 지인들이 나누다 보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제대로 된 승계 구도가 정착이 안 된 상태에서 다툼이 생기고, 해당 산업에 대한 전문적 식견도, 경영 경험도 없는 이들이 총수 일가라는 이유로 또는 그 지인이라는 이유로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 반복된다. 미술관을 하던 부인이, 음악에 빠져 있던 자녀가, 그리고 의사를 하던 사위가 갑자기 경영에 나서고 결정권을 갖는다. 그 사람들은 치밀한 후계 과정도, 혹독한 검증도 거치지 않았고, 무엇보다 기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본 적이 없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창업자가 회사를 키우는 데 몰두한 곳일수록 이런 일이 빈번하다. 땅이나 건물도 없이 가족과 친인척이 물려받은 게 주식밖에 없을 때 그렇다. 가족들은 목돈을 만들고 싶고, 상속세도 내야 한다. 결국 가족 간에 의견이 갈리고 난장이 된다. 우리나라의 많은 회사가 그렇게 점점 산으로 간다. 산업 세대교체기의 한복판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척박한 우리 경영 승계 문화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