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SB, ESG 공시 초안 공개…기후 외 사안은 선택 공시

글로벌 3대 ESG 공시기준이 확정된 데 이어 한국형 ESG 공시초안이 나왔다. 글로벌 정합성을 고려한 만큼 국제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ISSB) 기준 체계를 따랐다. 투자자에게 비교가능하며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이 큰 만큼 기업의 지속가능성 공시 관행을 재무 중심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한경ESG] 커버 스토리
이한상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위원장 겸 회계기준위원회(KASB) 위원장. 사진=한국회계기준원
국내 상장사에 도입될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이 발표되어 기준이 없어 혼란을 겪던 기업들이 ESG 공시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준용해 해외 진출 기업의 부담 완화가 기대된다. 기후는 의무로, 기후 외 사안은 선택적으로 공시할 수 있다. 산업 기반 지표, 내부 탄소가격 등 비교적 민감한 정보도 공시 여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기업이 산출에 어려움을 겪던 스코프 3(총외부배출량)는 향후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공시의무화 여부와 시기를 결정하기로 했다. 국내 사회적·문화적 맥락상 필요한 육아, 산업안전 등 지표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른 지표는 추가 공시 사항으로 구분해 기업의 부담을 덜었다.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4월 30일 정례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ESG 공시기준 공개 초안을 의결해 발표했다. KSSB는 국내 ESG 공시 등 각종 지속가능성 관련 공시 기준을 마련하는 기구다. 회계기준원은 “국내 기업의 공시 역량과 준비 상황을 균형 있게 고려해 기준 적용이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이번 기준을 마련했다”고 했다.

ISSB 기준과 동일 구조KSSB는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공시를 위한 일반 사항(제1호)과 기후 관련 공시(제2호)를 공개했다. 제1호는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 정보를 작성하고 보고할 때 준수해야 하는 개념적 기반과 일반적 요구사항을 다룬다. 제2호는 기후와 관련한 공시 요구사항을 보다 자세히 규정한 기준서다. 따라서 기업은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서 제1호와 제2호를 모두 적용해야 한다.

제1호에 따라 공시하려면 기업은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 및 기회 관련 정보를 거버넌스, 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라는 4대 핵심 요소에 맞게 공시해야 한다. 이러한 4가지 핵심 요소는 기업이 위험 및 기회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여주며,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의 권고안과 동일하다.

기후 공시는 기업 전망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기후 관련 위험 및 기회를 포함한다. 기후 관련 사안은 기업의 재무 보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에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기후 관련 사안은 다른 지속가능성 관련 주제보다 정량화하기가 용이해 기업의 공시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 KSSB의 설명이다.KSSB는 기업의 기후 관련 위험 및 기회에 대한 성과를 다른 기업과 비교할 수 있도록 기업이 공통적으로 공시해야 할 7가지 지표 범주를 제시했다. 온실가스배출량, 전환 및 물리적 위험에 취약한 자산 또는 사업활동 정보, 기회에 부합하는 자산 또는 사업활동 정보, 자본 배치, 내부 탄소가격, 경영진 보상이 포함됐다.
보고 범위는 재무제표상 보고 기업과 동일하게 설정해야 한다.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 공시와 재무제표 간 연계성을 고려해야 자본시장 이용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임의로 보고 범위를 변경할 경우 정보 공시 회피로 여겨지거나 그린워싱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글로벌 투자자들은 연결 실체의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비용 효율적 공시 가능KSSB는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기업의 역량과 준비 수준, 자원에 따라 적용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예를 들어 기후 관련 위험 또는 기회가 기업의 재무 상태, 재무 성과 및 현금흐름에 미치는 예상 영향에 대한 정보를 공시하는데, 기업이 양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역량과 자원을 갖추지 않았다면 질적 정보로 대체할 수 있다. 시나리오 분석에서도 기업 상황에 따라 접근법을 달리해도 된다.

높은 수준의 판단이나 불확실성이 수반되는 요구사항(위험·기회 식별, 가치사슬 범위, 스코프 3 측정 등)에는 과도한 원가나 노력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뒷받침될 수 있는 정보를 활용하도록 했다. 정보 취득에 드는 비용에 제한을 둔 것이다.

공개 초안은 온실가스배출량(스코프 1·2·3) 관련 측정 방법 등 기준도 제시한다. 온실가스 측정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국제기준(GHG 프로토콜)뿐 아니라 국내에서 요구하는 다른 측정 방법(탄소중립 기본법 기준)의 사용도 허용한다. 산업 기반 지표 공시 여부도 기업이 선택할 수 있다. KSSB는 동일 산업 내에서 공통으로 적용할 산업별 기준이 마땅히 없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정책 관련 공시는 선택

정책 목적을 고려한 추가 공시사항(제101호)도 마련했다. 현재 법률이나 규정에 따라 다양한 위치에 산발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를 한데 모아 정보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육아 친화 경영, 산업안전, 인권 경영, 장애인 고용 등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의 이행을 독려하는 목적도 있다. 기업은 제101호의 적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으며, 공시 요구사항을 항목별로 선택해 공시할 수 있다.

다만 제101호는 기업 입장에서 다소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KSSB도 정부 부처와 정책 목적을 고려한 공시 지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무적 연관성이 떨어지는 지표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선택 지표라 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부처의 요구를 회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KSSB는 이날 공개한 초안을 바탕으로 기업과 회계법인 등 의견 수렴을 거쳐 올 상반기 안에 최종 기준을 발표할 계획이다. 충분한 의견 수렴을 위해 5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4개월간 의견 조회 기간을 갖는다. 최종 기준 발표와 함께 기업의 공시기준 적용과 이행을 돕기 위해 관련 지침(온실가스배출량 측정, 중요성 판단 등)도 마련하기로 했다.한편 KSSB 공개 초안이 나온 만큼 금융위원회도 ESG 공시 로드맵 발표를 더 이상 미루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 3월 2023년 3분기 중 ESG 공시 제도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금융위는 2026년 이후로 ESG 공시 도입 시기를 미루고 구체적 일정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