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새치기한다는 느낌을 준다면 '줄서기 디자인'이 문제 [서평]

디자인 딜레마

윤재영 지음
김영사
280쪽|1만7800원
Getty Images Banks
미국 한 놀이동산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가 물었다. “엄마, 저 사람은 왜 줄 서지 않고 들어가는 거예요?”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은 우리보다 돈을 더 많이 냈으니까 먼저 들어가는 거야.”

제법 논쟁이 되는 사안이다. ‘돈만 있으면 새치기해도 된다’는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반면 ‘돈으로 시간을 사는 행위’는 다른 분야에도 많은데 뭐가 문제냐는 반론도 있다.<디자인 딜레마>를 쓴 윤재영 홍익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이를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사용자 경험(UX) 디자인이 잘못되었기에 이런 논란이 생긴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공항 발권 창구 사례를 든다. 여기서도 돈을 더 내고 비싼 좌석을 구입한 사람은 줄을 안 선다. 이코노미석 좌석 승객도 불만은 없다.

만약 일등석 승객을 위한 창구가 따로 없고, 줄이 하나라면 어떨까.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길게 줄을 선 가운데 일등석 승객이 오면 줄의 맨 앞에 세워주는 식이다.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분은 좋지 않을 것이다. 안 그대로 오래 기다려 힘든데, 자신보다 늦게 공항에 도착한 사람이 맨 앞에 서는 걸 보면 새치기당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금융 플랫폼 기업 토스가 인터넷 은행 서비스를 출범했다. 파격적인 이자 혜택으로 출범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계좌 개설을 희망하는 예비 고객들에게 사전 신청을 받았다. 계좌 개설은 서비스 출범과 함께 순차적으로 이뤄지는데, 이용자들은 마치 은행에서 대기 번호표를 받는 것처럼 자신이 몇 번째인지 순번을 안내받았다.

토스는 이벤트도 벌였다. 친구를 이 서비스에 초대하면 순번이 올라갈 수 있게 했다. 이벤트 효과 덕분인지 사전 신청자 수는 100만명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이내 논란에 휩싸였다. 한 이용자는 자신의 계좌 개설 순서가 2주 만에 3만등이나 밀렸다고 했다.그래서 UX 디자인은 중요하다. 놀이동산도 익스프레스 줄을 따로 만들었다면 반감이 덜 할 수 있다. 놀이기구 일부 좌석을 유료 예약제로 판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줄을 서는 사람을 위해 기다리는 동안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도 있다.

<디자인 딜레마>는 이렇게 디자인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결제를 유도하기 위해 어떻게 디자인이 활용되는지, 인공지능(AI) 비서의 목소리는 어떻게 우리의 판단을 흐리는지, 왜 사람은 뽑기에 끌리는지 등이다.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